하이브-민희진 사태로 본 ‘멀티 레이블’의 두 얼굴

  03 05월 2024

국내 1위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와 ‘뉴진스 엄마’로 불리는 민희진 어도어 대표 간의 갈등은 K팝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유쾌한 이벤트는 아니다. 이 사태가 환기하는 문제의 본질에 대한 관심보다는 갈등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다. 싸움 구경하기 좋은 ‘팝콘각’ 관점에서 이 상황을 바라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확한 상황을 이해할 만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다. 민 대표의 기자회견을 ‘밈’으로 사용해 그것 자체가 놀이가 됐다. 그가 입은 착장이 ‘완판됐다’는 뉴스는 피로감을 더욱 가중시킨다. 어느 전문가의 말처럼 도파민 중독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 하이브 사옥, 민희진 어도어 대표 ⓒ시사저널 이종현, 최준필·연합뉴스

독주 체제 굳혀가던 중 터진 악재

하이브는 의심의 여지 없이 현재 K팝을 움직이는 최고의 ‘파워하우스’다. K팝에서 최초로 멀티 레이블 체제를 실험하며 경쟁사를 압도하는 스케일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몇 년 전에는 미국 팝 음악의 거물인 ‘스쿠터 브라운’의 지주회사인 ‘이타가 홀딩스’를 인수합병해 미국 시장 및 글로벌 팝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기도 했다. ‘구멍가게’ 수준이던 K팝 기획사를 명실상부한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발돋움할 수 있게 만든 가장 중요한 플레이어다.

하이브는 독주 시대를 굳히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이브의 전신이자 산하 레이블인 빅히트 뮤직 소속의 방탄소년단이 여전히 건재했다. 산하 레이블 소속의 뉴진스, 세븐틴, 르세라핌 등이 예외 없는 성공을 거뒀다.

하이브가 이룬 위상과 무관하게 K팝의 역사에선 매우 독특한 성장 과정을 밟은 기업임을 알 수 있다. SM, JYP, YG 등 굵직한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수십 년간 누적된 다양한 아티스트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통해 점진적으로 성장해 왔다. 하이브는 방탄소년단의 벼락 같은 성공 위에서 업계 최고의 위치로 고속 성장했다.

콘텐츠, IP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하이브는 다른 K팝 기획사들에 비해 기반이 탄탄하지 못한 기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물론 가장 믿음직한 IP인 방탄소년단을 보유하고 있어, 그 모든 격차가 좁혀지고도 남는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재계약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그 리스크는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하이브가 SM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것, 위버스 같은 플랫폼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노력하는 것도 아마 이 같은 한계를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적인 불리함을 메우고자 시도한 또 하나의 사업적 방향성이 바로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한 멀티 레이블 체제였다.

100년이 넘는 현대 음악 산업에서 멀티 레이블 체제의 역사는 이미 40년이 넘어간다. 대표적으로 유니버설, 소니, 워너 등 3대 회사를 중심으로 멀티 레이블 체제가 완성된 미국 대중음악 산업을 예로 들 수 있다. 1970년대까지는 개성이 강한 레이블 위주로 성립됐던 미국 음악 시장이 1980년대부턴 본격적으로 인수합병 시대로 접어드는데, 경쟁이 심화되고 음악 산업의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에서 성공을 꾀하기 위해 택한 필연적 방향이었다.

1990년대라는 과도기를 지나 2000년대에 이르러 대기업 위주의 멀티 레이블 체제는 더욱 강화됐다. K팝은 아직 그 출발 단계에 머물러있다. 이 같은 새로운 체제의 성공적 안착을 위한 성장통 관점에서 몇 가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가장 주목하게 되는 것은 모기업인 하이브의 갈등 조정 능력이다. 이 갈등은 사업적인 측면부터 개인 간 갈등까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민희진 대표가 지적한 ‘카피 논란’도 이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카피’라고 하는 강한 워딩이 사용되었을 뿐, 사실 대중음악에서 표절이나 레퍼런스 논란은 그 자체로는 전혀 새롭지 않다. 신인 그룹 아일릿이 정말 뉴진스의 음악이나 콘셉트를 그대로 모방했는가 여부도 우리가 평소 접하는 표절 논란의 연속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당연히 ‘똑같네’라는 반응부터 ‘별로 안 비슷한데’라는 반응까지, 대중의 판단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일각에서는 ‘비슷하다. 하지만 그게 어때서’라든지 ‘뉴진스가 특정 콘셉트를 전세 냈는가’라는 의견도 나온다. 그렇게 따지면 모든 ‘걸크러시’ 콘셉트는 블랙핑크를 따라 한 것이냐라는 반박도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이건 본질과는 무관한, 그러니까 번지수를 잘못 짚은 논의다.

뉴진스 ⓒ연합뉴스

‘하이브-민희진’ 사태의 본질을 봐야

한 아티스트가 다른 아티스트의 음악, 그러니까 멜로디, 편곡 등을 따라 하고 유사하게 만드는 행위는 바람직하냐 여부를 떠나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나아가서는 어떤 아티스트가 제시한 이미지나 콘셉트의 방향성 혹은 특정 디테일을 모방하는 것도 흔하다. 좋고 나쁨을 떠나 그것 자체가 음악 산업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 이번 뉴진스-아일릿 논쟁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청순’ ‘소녀’ ‘복고’ 등 어떤 추상적인 키워드들이 모방된 것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뉴진스를 떠올리게 만드는 요소들, 혹은 이미 시장에서 ‘뉴진스풍’이라고 소비자들에게 인식된 것들이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미묘하게 모방돼 적용됐다는 점이다.

물론 이게 결코 불가한 방식이라고 보이진 않는다. 동종 업계의 경쟁사 간에 벌어지는 평범한 경쟁이라면 오히려 ‘리더-팔로어’의 역할을 좀 더 분명히 만들어 리더의 가치를 높여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경우에는 그런 긍정적인 부분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모방에 대한 비판은 멀티 레이블의 존재로 일부 정당화된 측면이 있고, 처음 불거졌던 대중의 비판이나 평단의 지적도 갈 곳을 잃고 서서히 무력해졌다.

비슷한 콘셉트를 시도하는 와중에 나름의 차별화를 시도하려고 애쓴 아일릿과 소속사인 빌리프랩의 노력이나, 음악적인 면에서의 매끈한 만듦새 역시 인정받을 부분이긴 하나, 결국은 갈등의 한 요인이 된 것도 사실이다. 정답은 없다.

반드시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멀티 레이블 체제에서 모기업인 하이브의 비전과 조정 능력이 조금 더 섬세하게 적용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이브-민희진 갈등의 최종 결론과는 무관하게 K팝이 더 성숙해져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 우리는 도파민을 부르는 갈등 그 자체보다는 본질적인 방향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