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는 野, 위태로운 與…尹대통령 ‘특검 딜레마’

  05 05월 2024

“안타까운 죽음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 (대통령실)

“정치적 목적으로 입법 폭주하고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 (국민의힘)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히자는 것이 왜 나쁜 정치인가.” (더불어민주당)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특검)법’을 둘러싼 정치권 내 공방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모습이다. 민주당이 2일 본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켰으나,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하겠고 밝히면서 여의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정치권에선 특검을 둘러싼 논란이 민주당보다는 정부 여당에 부담이 될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총선 대패 후 ‘협치’를 공언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다시 사용한다면, 남은 임기 동안 ‘거대 야당’의 공세가 더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서 재표결이 이뤄지더라도 국민의힘 내 ‘이탈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홍철호 신임 대통령실 정무수석을 직접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빛바랜 영수회담…尹 ‘10번째 거부권’ 사용할까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는 지난 4월29일 영수회담에서 ‘소통·협치’를 공언했다. 이후 여야가 ‘이태원 참사 특별법’ 합의를 이루면서 ‘달라진 국회’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됐다. 그러나 훈풍은 오래 불지 않았다. 민주당이 ‘채상병 특검법’을 단독으로 처리하자 정국이 다시금 격랑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국민의힘은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 ‘정치적 악의’를 갖고 특검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일 국회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채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수사 기관의 수사가 진행 중임에도 정치적 목적으로 입법 폭주하고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을 규탄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도 거칠게 반발했다. 같은 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브리핑에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에서 채상병특검법을 의사 일정까지 바꿔 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채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일방 처리된 특검법이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리는 사례로 남을 것이란 우려가 큰 만큼 대통령실은 향후 엄중하게 대응하겠다”며 사실상 대통령의 ‘거부권 사용’을 암시했다. 윤 대통령이 만약 채상병 특검법에도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이는 10번째 거부권 행사가 된다.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 앞에서 열린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 국민의힘 참여 촉구 집회에서 해병대예비역연대 관계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尹 지지율 정체 속…與 ‘이탈표’ 가능성도

다만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도 있다. 총선 후 정부 여당을 향한 민심이 여전히 차가운 가운데, ‘채상병 특검법’에 찬성하는 국민이 과반을 넘긴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지난 2일 발표되면서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달 29일부터 사흘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채상병 특검법’에 찬성한다는 응답자 비율은 67%였고, 반대한다는 응답자는 19%였다.(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 방식, 응답률 14.6%,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윤 대통령이 ‘채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시 ‘영수회담 효과’가 백지화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입장은 수사 외압 의혹이 군의 명예와 사기와 직결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보수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진상을 규명해야 할 일”이라며 “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통 큰 결단을 내렸다면 그도 달라졌다는 긍정적 여론의 평가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총선 후 여당에 미치는 ‘윤심’(윤 대통령 의중)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도 정부의 고민을 더하는 지점이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국회에서 재의결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때 국민의힘 내에서 19명만 이탈해 찬성표를 던져도 ‘채상병 특검법’은 통과된다. 21대를 끝으로 국회를 떠나는 여당 의원은 55명에 이르는데, 이들이 소신투표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시 특검법에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의원도 나왔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채상병 특검법’과 관련해 “만약 국회에서 다시 투표할 일이 생긴다면 저는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며 국회 재표결 시 찬성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국민의함 한 의원은 “개인적으로 야당의 폭거에는 우려가 크다”면서도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만 보고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