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은행법에 급제동 걸린 K방산의 질주

폴란드 방위산업 수출 2차 계약이 한국수출입은행(이하 수은)의 수출금융 한도 제한이라는 암초를 만나 고전하는 가운데, 국방부가 시중은행의 금융 지원을 통해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 국내 은행들이 나서면서 당장 방산업계는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됐지만, 향후 대규모 해외사업 발주가 예상되는 만큼 궁극적으로는 수은의 법정자본금 한도를 늘리는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는 11월6일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 관계자들과 만나 폴란드에 자금을 대출한다는 내용이 담길 투자의향서(LOI) 체결에 관한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는 국방부 실장급과 5대 은행 임원들이 참석했다. 2시간 정도 진행된 이번 회의에선 은행 관계자와 국방부·방산업계가 은행의 대출 여력과 적정 금리 등 세부적인 대출 조건을 논의했다.

수출입은행의 수출금융 한도 부족으로 30조원 규모의 폴란드 방위산업 수출 2차 계약이 미뤄지면서 수은법 개정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방위산업 전시회인 ADEX 2022 모습 ⓒ연합뉴스

폴란드 방산 수출 2차 계약 연기, 왜?

정부와 5대 은행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등 국내 방산기업과 폴란드 정부의 2차 무기 수출계약을 ‘신디케이트론’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디케이트론은 다수의 금융기관이 동일 조건으로 일정 금액을 대출해 주는 집단대출이다.

폴란드 정부는 지난해 8월 국내 방산업체들과 17조원 규모의 무기 수입계약을 맺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현대로템의 K2 전차, 한공우주산업(KAI)의 경전투기 FA-50 등이다. 이 중 K9 자주포와 K2 전차 물량은 계약을 2022년 1차, 2023년 2차로 나눠 체결하기로 했다. 통상 무기 계약은 수출 규모가 워낙 크고 정부 간 거래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수출하는 국가에서 금융 지원을 해주는 방식이 통용된다. 한국은 수은과 무역보험공사(무보)가 금융 지원 역할을 맡아왔다. 계획대로라면 최대 30조원 규모의 2차 계약은 올 상반기에 마무리됐어야 했다. 하지만 2차 계약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수은의 자기자본을 기준으로 한 수출금융 한도가 걸림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현행 수은법 시행령은 특정 대출자에 대한 신용 제공 한도를 자기자본의 40%로 제한하고 있다. 폴란드는 2차 계약 80% 수준인 약 24조원의 정책금융 지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수은이 지원 가능한 자금은 바닥을 치고 있다. 7월말 기준 수은의 자기자본이 18조4000억원으로 줄어들면서 폴란드에 지원할 수 있는 수출금융 지원액은 7조3600억원으로 제한됐다. 게다가 수은은 이미 1차 이행 계약 지원을 위해 무보와 각각 6조원씩을 투입하기로 하면서 2차 계약에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은 1조360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수은의 자금 지원 여력이 바닥나며 2차 계약 이행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자 정부가 나서 시중은행에 손을 내민 것이다.

시중은행이 지원사격에 나서면서 폴란드 무기 수출 상황도 한숨을 돌렸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우선 시중은행이 제시하는 높은 금리를 폴란드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수은은 지난 1차 계약 때 시중은행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지원했다. 시중은행은 국책은행만큼의 낮은 마진으로 대출해줄 수 없는 구조다 보니 폴란드 측도 시중은행 지원책에 대해선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주단 참여를 앞두고 있는 시중은행들의 표정도 썩 밝지 않다. 재정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폴란드에 수십조원에 달하는 대출을 내준 후 회수 방법도 고민거리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폴란드 국가신용등급을 한국(AA)보다 네 단계 아래인 ‘A-’로 평가하고 있다.

결국 은행이 요구하는 조건을 맞춰주기 위해선 정부의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가 간 무역거래에서 불리한 조건으로 수출금융을 지원하는 시중은행에 대해선 일종의 ‘개런티’가 부여돼야 한다는 것이다. 방산 펀드를 조성해 폴란드 무기 수출사업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게 금융권의 목소리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는 “국방부가 나서 시중은행의 금융 지원 참여를 독려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면서 “금감원, 정부 경제수석 등 실질적으로 금융기관에 혜택을 약속할 수 있는 주체가 나서 은행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10월24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윤희성 수출입은행장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은법 개정은 여전한 숙제

정부와 기관의 소극적인 행정도 수출 기회를 놓치는 데 한몫한다는 주장이다. 문 교수는 이명박 정부 당시 진행했던 UAE 원전 수출을 예로 들며 “당시 금융위원회는 기획재정부 장관과 협의해 신용 공여 한도 제한 규정의 예외사유를 적용해 40% 한도액을 초과해 지원한 바 있다”면서 “범정부 방산 수출 전략회의를 통해 정부·기관 간 협력체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방산업계에서는 궁극적으로 수은의 신용 공여 한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규모 수출계약마다 높은 금리의 시중은행 대출에 기댄다면 국내 방산 경쟁력도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방산 수출 후발주자인 한국이 높은 금리 등 경쟁국보다 떨어지는 조건을 내걸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결국은 수은법 개정 등 정부의 충분한 수출금융 지원 방안이 갖춰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방산업계를 중심으로 정책금융 지원 확대 목소리가 커지자 국회에서도 수은법 개정에 나섰지만 연내 통과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는 수은의 자본금 한도를 35조원으로 높이는 안과, 정부 간 계약일 때는 신용 공여 한도를 올려주는 안 등이 계류 중이다. 그러는 사이 K방산의 경쟁력은 약해지고 있다. 우리 정부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속담을 곱씹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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