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고 초라한 옷차림에도 주윤발은 빛난다…영화 '원 모어 찬스'세 줄 요약이 뉴스 공유하기본문 글자 크기 조정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홍콩 누아르의 고전 '영웅본색'(1986)에서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쌍권총을 쏘던 저우룬파(주윤발)가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앤서니 펀 감독의 신작 '원 모어 찬스'에서다.
이 영화에서 저우룬파는 장발에 단추를 반쯤 채운 셔츠, 늘어진 가죽 재킷, 카고 바지를 입은 후줄근해 보이는 차림으로 나온다.
올해로 67세인 그는 나이도 굳이 숨기지 않는다. 빚쟁이들에게 쫓기면서 달릴 땐 숨이 차 도저히 못 뛰겠다는 듯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원 모어 찬스'의 주인공 광휘(저우룬파 분)는 왕년에 '도신'으로 통할 만큼 도박판에서 이름을 날렸지만, 지금은 빚더미에 앉아 하릴없이 카지노를 드나들며 인생 역전을 꿈꾸는 인물이다.
어느 날 그에게 옛 연인 이역(위안융이)이 찾아와 5만달러를 건네면서 자폐증을 가진 10대 아들 아양을 한 달 동안 봐달라고 부탁한다. 아양은 광휘와 이역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인데도 광휘는 존재조차 모르고 살았다.
당장 돈이 필요했던 광휘는 별말 없이 이역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광휘와 아양의 불편한 동거는 그렇게 시작된다.
이 영화의 기본적인 설정은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준다. 돈을 노리고 자폐증을 가진 형의 보호자가 되는 남자의 이야기인 할리우드 영화 '레인맨'(1989)이 그렇다. 이정재·이범수 주연의 한국 영화 '오! 브라더스'(2003)도 비슷한 설정이다.
'레인맨'의 주인공 찰리(톰 크루즈)처럼 광휘도 아양과 함께 생활하면서 변화한다.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아양을 윽박지르는 등 아버지다운 면모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광휘는 아양이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남다른 집중력으로 도박에도 도움이 되자 기특해 보였는지 맛있는 걸 사주고 목욕탕에도 데려간다.
도박판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면 선글라스를 끼고 득의양양해지는 모습이 보여주듯 광휘는 중년의 나이에도 철부지를 못 벗어난 사람이었지만, 아양을 돌봐주면서 아버지의 면모를 갖춰간다.
광휘는 카지노에서 떼돈을 버는 것으로 인생 역전을 꿈꿨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진정한 인생 역전이 찾아온 것이다. 그에게 새 삶을 열어준 '원 모어 찬스'(또 한 번의 기회)는 도박장의 카드가 아니라 자폐증을 가진 아들 아양이었던 셈이다.
저우룬파의 연기가 빛나는 작품이다. 그는 나이 든 철부지인 광휘가 성숙한 아버지로 변해가는 과정을 특유의 매력적인 미소에 담아낸다. 저우룬파는 '무쌍'(2018) 이후 5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원 모어 찬스'는 이달 초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갖춘 화제작을 소개하는 '오픈 시네마' 섹션에 초청됐다. 이번 영화제에서 저우룬파는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았다.
'원 모어 찬스'는 홍콩의 대표적인 촬영감독으로 꼽혀온 앤서니 펀 감독의 첫 단독 연출작이기도 하다.
11월 1일 개봉. 115분.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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