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이음매에서 어긋나 있다

  05 05월 2024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는 작가들이 늘 고민하는 문제다. ‘무엇’은 작품의 주제와 대상이다. 건축사사무소 운생동(韻生同) 대표 건축가 장윤규(60)는 “산수를 그린다”고 말한다. ‘산수(山水)’는 동양적 풍경의 의미다. 《인간산수》전의 작품들은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상(象)이 ‘겉으로 나타나는’ 외현(外現)을 조성하는 형(形)을 만나 표현된 ‘의경(意境)’이다. 그는 “(서양의) 풍경화처럼 느껴질 수 있는 산수는 마음속 틀을 통해 드러난 게 아닐까”라고 자문한다.

먼 발치에서 체감한 ‘조선 회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장윤규의 창작은 붓펜과 아크릴을 이용해 평면 드로잉으로 표현된다. 현대미술에서 ‘드로잉(drawing)’은 ‘종이에 하는 모든 종류의 작업’이다. 자신의 설계사무소 시스템을 활용해 수차례 컴퓨터 모델링 변환을 거쳐 3D프린터로 만든 부조(浮彫) 작품은 플라스틱을 재료로 사용한 아상블라주(assemblage·집적) 성질을 갖는다.

작가 장윤규는 묘사할 대상의 윤곽을 선으로 그린 후 색을 칠하는 한국화의 구륵법(鉤勒法)을 차용한다. 픽셀 또는 패턴인 인물(인체)로 특정 공간을 반복적으로 채워 나간다. 크기를 늘리고 줄여 찾아낸 비례의 ‘소인(小人)’을 매개체로 평면 공간을 리드미컬하게 운용한다.

판테온, 판화지 위 붓펜과 장윤규 작가 ⓒ장윤규 작가 제공·시사저널 임준선

2차원과 3차원의 충돌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복합문화공간 크링(kring·2008년)은 건축가 장윤규에게 ‘경계’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이쪽 성질을 저쪽에 박아 넣으려는 ‘상감(象嵌)’ 같은 외피(skin) 디자인은 이중적 가치를 선호하는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1930~2004)의 철학과 맥을 같이한다. 장윤규는, “거리에 조형물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그 안의 공간적 체험을 유도하고 싶었다”고 한다.

대상(對象)에서 받은 감흥을 스케치나 사진으로 남기는 과정이 생략되고 대상의 이면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마치 몸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유도할 목적이었다. 미셸 푸코가 말한 비일상(非日常·한시적 유토피아)인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s)는 공간-존재의 한계를 위반하는 반공간이다. 데리다는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인 현전(現前)과 부재(不在)를 흔적(trace)으로 설명한다. 현전(現前·현재 있음, presence)도 아니고 부재(absence)도 아닌 흔적은 ‘있다’ ‘없다’고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비확정성’(undecidable)을 갖는다. 있음과 없음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있는 경계(선)이다.

인간의 매듭‖, 판화지 위 먹 ⓒ장윤규 작가 제공

건축가로서 갖는 공간 경계에 대한 고민이 드로잉 ‘매듭’(또는 ‘연속선상의 미로’), ‘산수’ 시리즈에는 안과 밖, 내부와 외부를 넘나드는 비확정적 2차원과 3차원이 충돌하는 경계는 대상을 드러내는 매개인 좌우, 상하 여백으로 드러난다. 단절하고 충돌하는 시간이 하나의 작품 안에 공존할 때 빚어내는 미학적 매력이 있다.

장윤규 작품 전체를 하나의 디지털 화면에 모아놓고 보면 ‘질서와 균형과 조화’의 그림인 만다라(曼陀羅·mandala)를 떠울리게 한다. ‘만다라’는 산스크리트어 ‘만다(Manda)’와 ‘라(la)’가 합쳐졌다. ‘만다’는 중심, 본질이라는 의미이고, ‘라’는 완성하다라는 뜻이다.

무채색과 유채색의 산의 형식을 갖춘 그림은 ‘본질을 완성’하기 위한 여정에서 만난 도상이다. 장윤규는 산을 단순 기하학적인 형태의 추상적·복합적 모티브만으로 구성된 매스(mass)를 가진 골격 구조로 이해한다. 산의 모습은 나무 줄기처럼 보이는 방사성 필획이 특징이다. 운생동이 설계한 서울 안국동 사거리 복합문화시설 ‘도화서길’(2020) 건물 외피는 산의 형태를 띠고 있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1759)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바위 모습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장윤규는 자신이 체험한 이탈리아 로마의 판테온(Pantheon)에서 가져온 원형의 도상을 ‘사각의 캔버스에 먹으로 그린 형상’으로 연결한다. 밑에서 위로 올려다본 뚫린 천장의 원형 모습에서 확장의 한계가 없는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우주, 조화의 이미지로 이해한다. 장윤규는 ‘정서의 내면’ ‘무의식의 미로’를 탐색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해체적 경험’을 강조하는 회화적 언어를 구사한다.

건축산수‖, 3D프린팅 ⓒ장윤규 작가 제공

시간과 공간의 해체적 경험

영성가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 신부의 선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장윤규의 《상자 인간》 시리즈는 인간을 틀(네모, 박스) 안에 넣기도 하고, 밖으로 나오게도 한다. 박스는 내재적 개념이며 프레임이다. 인간은 네모로 상징되는 규칙, 즉 제도권의 선을 경계로 상호 대립되는 가치관이 충돌하고 양분되는 사회 현상 속에서 살아간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의 소설 《바벨의 도서관》에서 우주(도서관)는 부정수 혹은 무한수로 된 육각형(박스) 진열실들로 구성돼 있다. 는 ‘도서관(우주)은 무한하지만 주기적이다’고 결론 내린다. 우리가 사는 우주는 직선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닌 순환적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