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中 정부, 외교부에 ‘알리 통관 절차 없애 달라’ 요구했다”

  22 04월 2024

“지난해 중순 한·중 외교부의 실무진 회의 중 중국 측이 ‘알리익스프레스의 물품을 한국에 트럭째 바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한·중 외교 관계에 정통한 중국 전문가는 익명을 전제로 시사저널에 이렇게 전했다. 중국 정부가 대놓고 한국의 통관 절차를 무시하면서 자국 이커머스의 간판 격인 알리를 밀어준 것이다. 해당 요구는 한국 측 거부로 철회됐지만, 이는 알리의 국내 진출에 중국 정부의 전략적 계획이 숨겨져 있음을 시사한다.

4월17일 서울 지하철 3호선 고속터미널역에 알리익스프레스 광고판이 설치되어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한국 정부, 中 요구를 즉각 거부

세상에 공짜는 없다.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격언이지만, 중국 이커머스 업체의 ‘공짜 마케팅’은 큰 성과를 거뒀다. 선봉장인 ‘알테쉬’(알리·테무·쉬인)는 국내에서만 1000만 명이 넘는 이용자를 확보해 기존 유통 플랫폼의 아성을 넘보고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공짜는 없다는 격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점유율을 높인 중국 업체가 국내시장을 교란하기 시작하면 치러야 할 대가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중국 이커머스의 한국 진출을 통상이 아닌 안보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장 우려되는 부분은 개인정보 유출이다.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 2월 알테쉬 앱에 접속한 사람은 총 1467만 명(중복 포함)이다. 최근 이뤄진 대대적인 마케팅과 PC 사이트 접속자를 고려하면, 이제는 15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 인구 10명 중 3명이 알테쉬를 둘러본 셈이다.

이 가운데 물건을 한 번이라도 구매한 경험이 있다면, 신상정보가 업체 측에 넘어갔다고 봐야 한다. 테무의 경우 기본적으로 이름과 주소, 이메일, 전화번호, 결제 정보 등을 수집하고 있다. 또 “이용자에게 명시한 다른 목적에 따라 이용자가 제공한 다른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적시해 놓았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개인정보보호법 15조 위반”이라며 “당연히 이용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부당한 개인정보 사용”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테무는 “고객 개인정보를 데이터 제공업체, 정부기관, SNS 등으로부터 획득한 개인정보와 결합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간단한 신상정보를 다른 정보와 조합해 이용자를 속속들이 파악하는 게 가능해지는 셈이다. 더군다나 단순히 앱이나 웹에 들어가기만 해도 쿠키(이용자 방문정보 파일)가 노출돼 접속자의 흔적이 추적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알리와 테무는 쿠키의 활용 방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개인정보는 주요 인사의 동향과 약점을 파악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 이 같은 이유로 미국 의회는 개인정보 수집 의혹을 받는 중국의 SNS 틱톡을 강제 매각하는 법안에 압도적인 찬성표를 던졌다. 표결 전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건 틱톡 금지가 아니라 미국인의 개인정보가 미국에 있느냐, 중국에 있느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국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최근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의 개인정보 수집·이용 실태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중국 이커머스의 또 다른 안보 위협 요소는 마약이다. 2019년 알리에서 대마 등 마약류가 유통된다는 사실이 알려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차단 조치한 적이 있다. 현재는 알리와 테무 모두 ‘마약’ ‘대마’ 등의 검색어에 관련 상품을 띄우지 않고 있다. 하지만 관세청이 지난해 적발한 총 769kg 상당의 밀수 마약류 중 601kg(78%)이 국제우편 또는 특송화물로 전달된 것으로 확인했다. 이는 해외직구에서 주로 활용되는 배송 루트다.

이지용 계명대 중국학과 교수는 “중국 이커머스를 전면 허용하면 가랑비에 옷 젖듯 마약이 국내에 유통될 것”이라며 “마약이 확산하면 한순간에 범죄집단이 들끓고 치안이 무너지게 된다”고 경고했다. 국가정보원 역시 지난해 ‘아시아 마약정보협력체’ 출범 계획을 밝히면서 “마약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지경”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중국 이커머스로 인해 우리나라에 ‘좀비랜드’까지 생겨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좀비랜드는 미국 필라델피아 켄싱턴의 마약 거리를 일컫는다. 이곳에서는 펜타닐에 취해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미국 마약단속국(DEA)은 중국을 펜타닐의 주요 공급처로 꼽고 있다.

 

미 의회, 중국 SNS 틱톡 매각 법안 통과

중국 이커머스의 확장이 장기적으로는 국내시장 전반을 잠식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신순교 한국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 정책국장은 “중국 대형 플랫폼의 약탈적 가격 정책은 국내 소상공인의 경쟁력을 잃게 하고, 동종 상품을 제조하는 국내 제조업체도 주문량 감소와 매출 하락으로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중국 플랫폼은 막대한 프로모션 비용을 투입해 중소 규모의 구매대행·병행수입·유통업자를 경쟁에서 밀려나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상공인은 물론 제조·유통업체까지 고사할 것이란 주장이다.

시장을 장악한 중국 이커머스의 다음 행보는 소비자 압박이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중국 플랫폼이 B2B(기업 간 상거래)로 발을 넓혀 역직구(해외 소비자가 국내 상품을 직구하는 것) 중개에 나서면 국내 소비재 업체의 중국 종속이 심화될 것”이라며 “그때는 수급 조절을 통해 ‘요소수 대란’과 같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21년 중국의 수출 통제로 촉발된 요소수 품귀 현상은 국정원 내에 ‘경제안보국’을 신설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처럼 중국 이커머스가 그려낼 암울한 시나리오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배경이 있다. 업체들과 중국 정부의 관계다. 알리의 모기업 알리바바그룹의 표면상 최대주주는 지분 13.7%를 보유한 일본 소프트뱅크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지난 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관계자를 인용해 “중국 국영기업 또는 국부펀드가 알리바바그룹 자회사 12곳 이상을 부분 소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굳이 지분 관계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중국 정부의 자국 기업에 대한 입김은 이미 수차례 드러난 바 있다. 알리바바그룹 창업자 마윈은 그룹 계열사 앤트그룹의 기업공개(IPO)를 한 달 앞둔 2020년 10월 당국의 규제를 공개 비판한 적이 있다. 이후 중국 정부는 IPO를 중단시켰고, 마윈은 결국 경영권을 내려놓았다.

정연승 교수는 “중국 정부가 현재 기업을 조종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컨트롤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중국 정부가 이커머스를 내정 간섭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지용 교수는 “중국 공산당 휘하의 기업을 자유시장경제 논리로 대응해선 안 된다”며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등 강경책을 쓰는 동시에 국민에게 저가 공세의 이면을 적극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