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노인 빈곤의 악순환, 첫 매듭을 푸는 게 중요하다

세계에서 제일 큰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투자자들에게 가끔씩 공개 편지를 보낸다. 가장 최근의 편지에서 그는 앞으로 미국에 닥칠 가장 큰 리스크로 ‘은퇴 위기’를 꼽았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60세에 은퇴하고 85세까지 생존하는 요즘은 인류 역사상 은퇴 연령과 사망 연령이 가장 멀리 떨어진 시대다. 그리고 그 간격은 앞으로 의학기술과 신약의 발견으로 더 멀어질 게 분명하다.

젊을 때 벌어서 모아놓은 돈으로 견디고 생존해야 할 기간이 계속 늘어나다 보면 점점 더 많은 노인을 국가가 먹여 살려야 하는 만큼, 이 문제는 앞으로 가장 심각한 국가적 난제가 될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을 비롯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이 문제에 대해 아무 고민과 대책이 없다는 게 요지다.

ⓒ시사저널 최준필

사실 이 문제는 미국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심각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제일 오래 일하고 야근도 제일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일을 제일 적게 한다. 하루에 일하는 시간은 제일 길지 모르지만, 평생이라는 기간으로 관찰하면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OECD 국가 가운데 일하는 시간이 제일 짧다. 서른 살 무렵에 직장생활을 시작해 50대 중반에 대부분 경력을 마무리하는 게 일반적이니 직장생활 30년을 채우기 어렵다. 20대 초반에 직업을 가져 65세까지 그 직업을 유지하는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된다.

일하는 기간이 짧다는 사실은 은퇴 이후를 대비할 시간이 짧다는 말과 동의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노후 자금이 부족하다. 유럽 국가들은 45년을 일하면서 그 후 25년간의 은퇴생활을 대비하면 되지만 우리는 25년 동안 일하고 번 돈으로 그 후 35년의 은퇴생활을 견뎌내야 한다. 그리고 그 35년의 은퇴생활 중 첫 10년은 유럽이라면 이미 직업을 가졌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10년은 더 자녀들을 부양해야 한다.

이런 구조는 왜 우리나라의 노인 취업률이 높은지, 왜 출산율이 빠르게 낮아지고 있는지, 왜 그렇게 부동산 자산에 집착하는지를 모두 설명한다. 때로는 왜 우리나라 조직에는 내부 고발자가 드문지, 왜 우리나라는 다들 의대에 가려고 난리인지까지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시작점은 간단하다. 가능하면 일찍 취업하고 가능하면 늦게 은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번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업하면 평생 고용이 보장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게 문제를 푸는 시작점이다.

우리나라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급여 차이가 매우 크다. 그리고 두 집단 사이에 이동이 거의 없다. 한번 대기업 직장인이 되면 거의 해고될 걱정이 없다. 그 말은 한번 중소기업 근로자로 시작하면 대기업 직장인이 될 기회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해고가 어려운 구조여서 대기업 직장에 빈자리가 좀처럼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젊은이들은 몇 년이고 좋은 직장을 찾기 위해 취업 준비를 지속한다. 처음에 어떤 직장에 들어가느냐가 인생 전체를 좌우하기 때문에 당연한 선택이다. 취업 연령이 갈수록 늦어지는 것은 이런 구조 때문이다. 한번 대기업에 들어가면 굳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고용이 보장되면서 연봉 인상률도 높기 때문에 임금 대비 생산성은 급격히 하락한다. 쉽게 말해 경력이 오래된 직장인일수록 월급값을 하는 직장인이 드물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결과는 50세만 넘으면 퇴직을 권하는 분위기로 이어진다. 해답이 어디에 있는지는 자명하다. 그 매듭의 시작점을 풀기 어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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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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