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 치솟는데 한은은 왜 금 투자 주저하나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금값이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올 초반과 비교하면 가격이 13% 이상 뛰었다. 한동안 더 오를 수 있다는 전망에 투자자도 계속 몰리는 분위기다. 금값이 오를 수 있다고 보는 건 미국의 통화정책 완화 전망 때문이다. 금리가 내리면 금에 투자하는 기회비용이 그만큼 낮아진다. 통화량이 늘어나 달러화 가치가 약세로 돌아서도 달러를 대체하는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금의 투자 매력이 높아진다. 미국의 재정적자 폭증에 대한 우려도 금값을 자극하고 있다. 지난 1월 34조 달러를 돌파한 미국의 연방정부 부채는 90일마다 약 1조 달러씩 늘고 있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작년 말 97%였던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2029년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역대 최대치였던 116%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30년 후엔 166%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한다.

최근 금값이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각국 중앙은행 역시 금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에 위치한 한국금거래소의 골드바 모습 ⓒ연합뉴스

금값, 올 초와 비교해 13% 뛰어

늘어나는 빚은 미국 정부가 달러를 더 찍어 갚는 수밖에 없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올해 금 가격이 온스당 240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씨티그룹은 3000달러까지 전망한다. 국내 금값도 천정부지다. 세공비를 포함한 한 돈(3.75g)짜리 돌반지는 이미 45만원을 넘었다. 세계적으로 금의 주요 수요처인 각국 중앙은행들의 금 사재기도 심해지고 있다. 작년 세계의 중앙은행이 사들인 금은 모두 합쳐 1037톤이었다. 500톤 수준이었던 예년 평균의 두 배가 넘어 1950년 이후 가장 많았다. 특히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작년 한 해 동안만 215.9톤의 금을 사들였다고 한다.

이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곳이 한국은행이다. 2013년에 20톤의 금을 매입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 한국은행은 지금까지 금을 추가로 매입하지 않고 있다. 한은의 금 보유량 순위는 지난 10년간 세계 32위에서 36위로 하락했다. 한국은행이 가진 금은 104.4톤으로 작년 1년 동안 중국이 사들인 금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고, 전체 외환보유액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1.7%에 그친다. 한국은행은 적어도 당분간은 금을 살 계획이 없다고 한다. 이렇게 값이 오르고 있는 금을 굳이 사지 않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선택일까.

금은 현재 전 세계 중앙은행 대외준비자산의 10% 정도를 차지한다. 금이 자산으로서 안전성과 유동성 및 수익성을 충족하고 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금은 특정한 국가나 기업의 자산과 달리 신용위험이 없고 긴급한 위기상황에서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다른 자산과 비교해 나은지는 따져봐야 한다. 유동성 측면부터 보자. 한국은행은 외환 보유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유동성 확보에 두고 있다. 우리 경제의 높은 대외의존도를 생각하면 한국은행은 언제든 필요하면 외환시장에 개입할 실탄이 필요하다. 유동성이라는 면에서 생각하면 현금보다 나은 것은 없다. 금은 필요할 때 즉시 유동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21세기 들어 금을 가장 많이 사들인 상위 매입자들은 모두 신흥시장의 중앙은행들이었다. 단일 최대 금 매입자는 전체 중앙은행 금 매입의 28%를 차지한 러시아 은행이었고, 다음이 전체의 23%를 차지한 중국 인민은행이다. 모두 미국과 관계가 불편한 나라들이다. 특히 중국은 정치적 상황 속에서 일부러 미국 국채를 내다 팔고 금을 사들이고 있는 모양새다.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의 규모는 불과 5년여 만에 3분의 1이 줄어들었다. 러시아나 중국은 지정학적인 이유에서도 금 보유량을 늘리는 것이 합리적인 나라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달러의 강세는 경제적·지정학적 불확실성이 급증할 때 자주 발생한다. 달러는 불확실한 시대에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있다. 말하자면 미국의 우방국에는 그렇다.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지정학적 영향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그만큼 금을 매입할 유인이 떨어진다.

안정성과 수익성 측면에서는 어떨까. 금은 채권과 달리 이자가 없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기 어렵고 가격 변동성도 크다. 금 투자로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금값이 뛰어야 한다. 하지만 금값은 예측하기 어렵다. 다양한 변수에 대한 민감도가 너무 높다. 금값의 역사적 추이를 보면 안전자산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복이 심하다. 1980년 1월 금값은 온스당 850달러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그 후 끝없는 하락이 이어졌고 세기말인 1999년 8월에는 온스당 251달러까지 급락했다.

 

최근의 금값 급등 이유 설명 안 돼

그러다 다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1000달러를 넘기 시작해 2011년 말에는 1900달러까지 뛰며 정점을 찍었다. 그 후로는 다시 지지부진하더니 지난해부터 크게 치솟기 시작했다. 한은에 따르면 1973년 이후 변동성을 고려한 금의 위험조정 연평균 수익률은 0.26%에 불과해 0.96%의 미국 국채나 0.44%의 주식 수익률에 미치지 못했다. 현재도 사실 금값 추가 상승과 관련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지금 상황은 조금 이상한 측면이 있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기대 인플레이션이 하락하면 금값은 하락해야 한다. 현재 기대 인플레이션은 하락하고 있고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전망은 오히려 불투명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지정학적 긴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던 일이다. 금값이 하필 3월초부터 급등해야 했던 이유는 설명하기 어렵다.

금 보유량을 늘리는 것은 미국 국채 금리가 거의 제로에 가까웠을 때는 합리적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국채 투자도 상당한 수익률이 보장되는 현재, 금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 중앙은행이 무조건 금 자산을 많이 확보하는 게 정답은 아니다. 적어도 현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자산 대부분을 금이 아닌 전통적인 달러화 형태로 보유하는 것은 합리적인 결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금 보유 수준이 최선이며 절대 금 보유량을 늘려서는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다. 21세기 들어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금 보유량을 늘리지 않고 있는 이유는 이미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해 말 금 보유량은 미국이 8133.5톤으로 가장 많고 독일이나 이탈리아, 프랑스는 모두 중국이나 러시아보다 많은 금을 가지고 있다. 일본도 외환보유액 가운데 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보다 높은 3.5% 정도다. 수익률을 기대하는 투자 목적보다 위험 분산을 위한 자산의 다각화라는 측면에서는 지금보다 금 보유량을 조금 더 늘리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물론 뒤늦게 한국은행이 방향을 바꿔 다시 금을 사기 시작하기에는 조금 늦었다. 2013년 2월 한국은행이 마지막으로 금을 살 때 금값은 온스당 약 1600달러였다. 그러나 직후 금 가격은 폭락하기 시작해 2014년엔 1100달러대로 후퇴했고 한동안 한은은 금을 너무 비싸게 매입해 막대한 손해를 봤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한국은행으로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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