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통 생태계 교란하는 C커머스…“이대로 두면 우린 공멸” 

  22 04월 2024

“억만장자처럼 쇼핑하라.”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의 초저가 공습에 한국 유통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소비 패턴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속히 전환됐다. 이 틈을 노리고 대형 자본과 기술력으로 무장한 중국 이커머스(C커머스) 플랫폼이 한국에 빠르게 스며들면서 국내 유통 공룡들은 물론이고 이커머스(K커머스) 업체들의 불안감이 확대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C커머스 초저가 공세에 K커머스 ‘초토화’

C커머스의 최대 무기는 혀를 내두르게 하는 가격 경쟁력과 공격적인 마케팅이다. 국내 유통업체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초저가 상품을 앞세워 국내시장을 공략하면서 K커머스 업체들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제조업 등 중소기업의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K커머스의 피해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제로 고물가 등 장기간의 경기 침체로 저렴한 상품을 찾는 국내 소비자들이 유입되면서 C커머스 앱 이용자 수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이하 알리)를 보자. 알리바바그룹은 자회사 알리를 통해 해외사업을 운영 중이다. 알리의 한국인 사용자는 지난 2월 818만 명에서 3월 887만 명으로 8.4% 증가했다. 최근에는 11번가를 누르고 국내 쇼핑몰 앱 순위 2위에 등극하기도 했다. 

취급 제품도 다양하다. 알리는 현재 화장품, 의류, 식품 등 다양한 영역에 발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한국 제품 판매 채널인 ‘K-베뉴’를 선보이기도 했다. 유한킴벌리, 애경,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CJ제일제당 등이 현재 K-베뉴에 입점해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기업의 참여가 늘어나고 있다. 알리는 당분간 입점 수수료와 판매 수수료를 면제하는 혜택을 제공하면서 품목 확대에 나설 예정이다. 약 2632억원 상당의 투자계획도 밝혔다. 국내 물류망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올해 축구장 25개 규모의 통합물류센터를 구축한다. 한국 판매자들의 수출 지원에도 1억 달러를 투입할 방침이다.

테무는 어떨까. 테무는 지난해 7월 뒤늦게 한국에 진출했지만, 이미 미국에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테무는 중국 3대 전자상거래 업체 ‘핀둬둬(PDD)’홀딩스가 해외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2022년 7월 미국 동부 보스턴에 설립한 온라인 쇼핑몰이다. 현재 한국을 비롯한 49개국에 진출했다. 지난해 1월까지만 해도 테무의 미국 가입자는 1300만 명 수준이었다. 현재 5100만 명으로 세계 최대 이커머스인 ‘아마존’을 위협할 만큼 몸집을 키웠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G마켓을 제치고 4위에 안착했다.

패션에 특화된 쇼핑몰 업체 쉬인은 저렴한 가격 등을 앞세워 테무와 같이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아직 국내에 정식으로 진출하지 않았지만 한국 사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5월 아마존의 앱 다운로드 수를 넘어섰다. 지난해 약 62조3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다. 

ⓒfreepik

소비자 피해 건수도 덩달아 증가  

파격적인 가격에, 무료배송까지 앞세운 C커머스가 국내 소비자들을 잇달아 흡수하면서 국내 유통업계는 긴장 수위를 바짝 높이고 있다. 알테쉬 국내 이용자 수는 현재 약 1500만 명이다. 국민 3명 중 1명이 초저가 공세에 넘어가 C커머스를 이용하는 셈이다. 싼 인건비와 물류비를 무기로 초저가 물량 공세를 펴면서 한국 소비자들을 빠르게 끌어들인다. 이로 인해 국내 이커머스를 비롯해 온라인 쇼핑몰이나 판매자들이 매출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그러나 C커머스가 시장 점유율을 높이면서 많은 문제점도 노출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이 자국 공산품을 해외에 헐값에 대량 판매하고 있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산됐는지 모르는 제품을 전 세계에 마구잡이로 수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짝퉁’ 제품을 넘어 판매가 금지됐거나, 인증되지 않은 제품까지 이들이 막무가내로 팔면서 소비자 안전 문제에도 결국 적신호가 켜졌다.

인천본부세관이 최근 C커머스에서 판매하는 장신구(귀걸이, 반지, 목걸이, 발찌 등) 성분을 분석한 결과, 96개 제품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발암물질이 검출됐다. 이들 장신구는 C커머스에서 판매하는 2000원 상당(배송료 포함)의 초저가 제품이다. 이들 제품에서 국내 안전 기준치보다 최소 10배에서 최대 700배에 이르는 카드뮴과 납이 나온 것이다. 카드뮴과 납은 국제암연구소에서 지정한 ‘인체발암 가능 물질’이다. 중독될 경우 신장계나 소화계 등의 질환을 유발한다. 또 있다. 서울시가 발표한 조사에서도 ‘어린이 가죽 가방’ 등에서 기준치의 56배를 초과하는 발암물질이 나오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배송 지연, 위해물질 기준치 초과 등 소비자 피해 역시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연맹에 접수된 C커머스 관련 소비자 불만 건수는 465건이다. 전년(93건) 대비 5배나 증가했다. 이로 인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C커머스의 짝퉁 판매나 품질 저하 문제 등이 지적되기도 했다. 개인정보 유출 문제도 논란거리다. 국내 이용자의 개인정보가 중국에 넘어갈 우려가 크다. C커머스는 개인정보 처리를 외부업체에 위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 판매자들에게 제공된 개인정보가 어떻게 관리되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2023년 3월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 오픈한 ‘알리익스프레스 팝업스토어’에서 패션쇼를 하고 있다. 알리익스 프레스는 모델 한 명이 착용한 옷과 구두 등 패션 아이템들이 자사 쇼핑몰에서 5만원에 구입 가능하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이뿐만이 아니다. ‘싼값에 일단 사보고 별로면 미련 없이 버리겠다’는 소비심리가 소비 패턴을 망가뜨린다. 또한 생활쓰레기를 늘려 환경오염을 가속화하는 것은 물론, 인체에 유해한 제품을 확산시키면서 소비자 건강에도 악영향을 준다. 미국·유럽 등 세계 정부는 최근 앞다퉈 ‘C커머스 경계령’을 내리고 있다. 미국은 ‘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을 내세워 수입을 원천 차단하는 방안 및 직구 상품에 대한 무관세 기준을 낮추는 방안을 놓고 고심 중이다. 프랑스는 하원을 통해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패션 소비를 줄이기 위한 제재 법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정부 또한 중국 해외직구 플랫폼의 국내시장 잠식과 이에 따른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 등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도입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해외 사업자에 대한 규제 실효성은 물론, 중국과의 무역 마찰 등 외교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익성 동덕여대 평생교육원장은 “이 같은 문제를 예방하려면, 우선 소비자 스스로 현명하게 구매해야 한다. 사실이라고 믿기에는 너무 좋은 가격을 제공하는 플랫폼은 늘 주의해야 한다”면서 “(제품에 대한) 리뷰를 꼼꼼히 읽고, 판매처를 조사해야 한다. 반품 정책도 확실히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C커머스의 파상공세에 국내시장이 고전을 겪고 있다. 지난해 국내 온라인 쇼핑몰의 폐업 건수(7만8589곳)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내 유통망을 무분별하게 흔드는 C커머스에 대한 대응책을 정부가 신중하게 검토해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 강력 대응 선포했지만 뾰족한 대책 없어

정부도 C커머스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섰다. 중국의 해외직구 규모가 급격히 증가하고, 관련 피해도 증가하면서 강력 대응에 나선 것이다. 정부는 지난달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해외 온라인 플랫폼 관련 소비자 보호 대책’을 발표했다. 해외 온라인 플랫폼에도 국내법이 차별 없이 집행될 수 있도록 이들 플랫폼의 전자상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법 위반 적발 시 신속히 처리해 국내 플랫폼의 ‘역차별’ 문제를 없앤다는 방침이다.

독과점 지위 형성 등을 위한 해외 온라인 플랫폼의 경쟁 제한 행위 및 국내 입점업체 대상 거래 지위 남용 행위 등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한 모니터링도 계속 이어간다. 소비자 보호 의무 이행을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해외 사업자에게 소비자 보호 등 의무를 이행하도록 국내 대리인 지정을 의무화하도록 하는 전자상거래법 개정도 추진하기로 했다.

소비자 피해 우려가 큰 주요 항목에 대해서는 부처 간 공동 대응에도 나선다. 최근 발암물질 문제가 잇따라 불거지면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위해 식·의약품 관련 불법 유통, 부당 광고를 차단하기 위해 해외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광고 차단 요청, 특별점검 등 관리를 강화한다. 특허청·관세청은 해외직구의 통관 단계에서 가품 적발을 강화하고, 해외 온라인 플랫폼이 후속 조치 후 결과를 회신하는 자정 시스템 도입을 추진 및 확대한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한계다. 현행법상 C커머스를 규제할 방법이 뚜렷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유통업계와 소비자 보호를 위한 대응에 나섰지만, 정작 국내 기업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개선해 달라는 요구에는 아직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내 업체가 해외에서 물건을 들여올 때는 관세와 부가세를 낸다. 안전인증도 받아야 하지만 까다롭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하지만 중국 플랫폼은 이 모든 규제에서 비켜나 있다. 역차별이 나오는 대목이다. 규제 사각지대를 해소해 해외 사업자도 국내 사업자와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유통업체를 옥죄는 규제의 족쇄를 풀어주고 유통, 제조, 물류 전반의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대로 방치하다간 국내 유통업과 저가 제조업의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며 “해외 사업자에 대한 규제 실효성은 물론 중국과의 무역 마찰 등도 고려해야 한다.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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