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엔 ‘철퇴’, 의료인엔 ‘솜방망이’…무색해진 ‘리베이트 쌍벌제’

  13 05월 2024

불법 리베이트는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제약업계의 고질병이다. 리베이트는 의료인이 환자에게 적합한 의약품보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제품을 선택하는 왜곡된 결과를 초래한다. 자연스레 국민 건강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또 리베이트는 약값 인상으로도 이어진다. 결국 리베이트로 발생한 부담이 국민과 국민건강보험에 전가되는 구조다. 정부가 불법 리베이트를 주는 제약사 색출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리베이트 관행을 제약업계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다는 까닭에서다. [편집자주]

실제 일부 제약사는 생존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리베이트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받은 만큼 처방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리베이트가 관행화됐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 보니 의료인이 대놓고 리베이트를 요구하거나, 처방 약품을 더 많은 리베이트를 제시하는 제약사 제품으로 변경하는 일도 빈번하다고 했다.

제약사의 생사여탈권은 의사가 쥐고 있다. 처방이 매출로 이어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제약사 입장에서는 의사들의 요구를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제품군이 자체 개발 신약이 아닌 제네릭(복제약) 중심으로 이뤄진 제약사는 더욱 그렇다.

경찰은 4월29일 의사들에게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고려제약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연합뉴스

“생사여탈권 쥔 의사 요구 거절 어려워”

물론 의료인들도 리베이트를 받은 사실이 적발되면 ‘쌍벌제’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그럼에도 의료계의 리베이트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 리베이트로 인한 처벌이 이익에 비해 가볍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제약사와 의료인이 받는 처분의 온도차는 확연하다. 리베이트가 적발된 제약사는 과징금에 더해 약가 인하나 급여 정지 등의 처분이 내려진다.

반면, 의료인의 경우에는 리베이트 금액에 따라 통상 2개월에서 12개월의 자격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리베이트 혐의로 적발된 의사·한의사·약사 등 의료인에 대한 행정처분 224건 중 자격정지가 147건으로 전체의 약 65%를 차지했다. 자격정지 기간은 4개월이 46건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12개월 38건, 10개월 17건, 2개월 16건, 8개월 12건, 6개월 10건 등이 뒤를 이었다. 그보다 수위가 낮은 경고는 54건이었다.

가장 강도 높은 처분인 면허취소는 23건에 불과했다. 3회 이상 자격정지 처분을 받거나 자격정지 기간에 의료행위를 한 사실이 적발된 경우 면허취소 처분이 내려진다. 리베이트가 적발되더라도 수차례 회생 기회가 있는 셈이다.

의료인 처벌 사각지대도 존재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된 의료인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사례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로 리베이트가 적발된 일부 경우다. 의료법·약사법과 달리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는 리베이트 쌍벌제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되더라도 의료인은 처분을 피할 수 있는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셈이다.

실제 2017년 1월에서 2022년 8월까지 공정위가 적발한 리베이트 사건 11건 중 에스에이치팜과 프로메이트코리아, 한국애보트, 메드트로닉코리아 등 4건은 쌍벌제가 적용되지 않았다. 그 결과 이들 제약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의료인 57명은 처벌을 피했다. 이와 관련한 지적이 제기되자 공정위는 2022년부터 제약 분야 불법 리베이트를 적발·제재한 경우 복지부 등 관계부처에 이를 통보하고 협조를 강화한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여기에 리베이트가 적발된 제약사는 사명이 대대적으로 공개되며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 반면, 의료인은 그렇지 않다.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된 의료인에게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만 알려질 뿐 이름이나 소속 의료기관은 공개되지 않는다. ‘쌍벌제’라는 이름이 무색하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약 처방액을 정해 두고 리베이트를 받는 경우가 대다수라 의약품을 과잉 처방해 국민 건강권을 해치고, 더 나아가 건강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국민 건강과 건강보험 재정을 지키기 위해 불법 리베이트 처벌을 더 엄격하게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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