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强달러’에서 ‘King달러’로…자동차·조선 웃고, 항공·철강 운다

원-달러 환율이 종가 기준으로 1200원대를 기록한 것은 2023년 12월28일이었고, 올해 들어 원-달러 환율은 1300원대 이상을 기록하며 환율 ‘1300원 시대’가 일상이 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장 중 기준으로 1400원을 상회한 바 있다.

달러 강세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2022년부터 미국이 정책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하면서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나타나며 달러 가치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이 금리를 지속적으로 인상하면서 전 세계 자금이 안전자산인 달러로 몰리면서 ‘킹달러’ 시대가 도래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달러 강세는 미국 경제의 호황을 기반으로 한다. 지속적 고금리와 고물가, 전쟁 장기화로 대다수 국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미국 경제는 견고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발표한 세계경제 전망에서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2.7%로 0.6%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반면 유로 지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8%에 불과하다. 일본(0.9%), 프랑스(0.7%), 독일(0.2%)은 물론 한국(2.3%)보다 높다. 한국이 1분기 1.3% 성장하며 청신호를 보였지만, 주요 선진국 가운데 올해 미국보다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높은 나라는 없다.

고금리 속에서도 미국 경제가 탄탄해진 이유는 생산성 향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87.6달러로 한국의 49.4달러에 비해 크게 높았다. 38개 회원국 평균인 64.7달러보다도 높다. 미국의 노동시장 개선 역시 경제성장을 뒷받침한다. 미국의 지난 3월 실업률은 3.8%다. 사실상 완전고용 수준이다. 미국은 2년째 4% 미만의 실업률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지난 50년 동안 가장 긴 기간이다.

1997년 IMF,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제외하면 원-달러 환율은 900~1200원대 사이의 안정된 구간에서 거래돼 왔다. 따라서 최근 나타나고 있는 달러 강세 장기화를 금융시장 불안 요인으로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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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10원 오르면 현대차 2000억 더 벌어

달러 강세는 일반적으로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환율이 10% 상승하면 제조업 전반에 걸쳐 영업이익률은 평균 1.3%포인트 상승한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제조원가가 오르는 부작용이 있지만, 수출액 증가에 따른 이익률 개선(원화 환산 이익 증가) 효과가 더 크다.

대표적인 수출기업인 현대차는 달러 강세로 수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데다 원화 환산 영업이익이 늘어난다. 증권사 분석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경우 현대차는 연간 영업이익이 2000억원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생산량 가운데 해외 수출 비중이 더 큰 기아는 환율 민감도가 높아 현대차보다 더 큰 영업이익 상승효과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비철금속 등 수출업종도 강달러 현상에 따른 환율효과로 영업이익이 증가하며 주가도 상승했다. 올 1분기 영업이익 529억원을 거두며 전 분기 적자에서 탈출한 한화오션은 환차익으로만 350억원을 벌어들였다.

수출 비중이 높은 음식료 업종도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 라면을 비롯한 과자, 즉석밥, 떡볶이 등 가공식품 판매에서 성장세가 예상된다. 이 외에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패션, 뷰티 기업에도 달러 강세는 긍정적인 요인이다. 수출 기반 패션 ODM·OEM 업체가 대표적이다. 이들 업체는 면화를 비롯해 원부자재를 선주문으로 미리 확보해둔 데다 달러 결제 비율이 높아 원화 환산 이익이 늘어난다. 특히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들이 대표적인 강달러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반면, 항공과 철강 업계는 달러 강세가 원가 상승으로 연결되며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 원-달러 환율 10% 상승 시 철강과 운송서비스 업계에서는 원가 부담률이 각각 4.8%, 3.4% 오를 것으로 분석됐다. 환율은 항공사의 비용 대부분을 차지하는 리스비와 유류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말보다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법인세차감전순이익이 270억원 감소할 것으로 봤다. 아시아나항공은 원-달러 환율이 10% 오르면 법인세차감전순이익이 4602억원 감소한다. 철강업계는 제품을 수출해 벌어들인 외화로 유연탄과 철광석 등 주요 원료를 사들이는 ‘내추럴 헤지’를 상시 운영 중이다. 고환율이 길어지면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공장 증설 등으로 미국 현지 투자가 늘어난 기업들에도 달러 강세는 부담이 되고 있다. 현지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 과정에서 달러 자산보다 달러 부채 증가로 외화부채 상환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가령, SK하이닉스 역시 국내 대표 수출기업으로 꼽히지만 환율효과는 정반대다. SK하이닉스의 달러 자산은 177억 달러(약 24조3000억원)인 반면, 달러 부채는 219억 달러(약 30조원)로 부채가 자산보다 많다. 원-달러 환율이 10% 오를 경우 법인세차감전순이익에 미치는 영향은 마이너스 3321억원으로 추정된다.

환율이 10% 상승하면 제조업 전반에 걸쳐 영업이익률은 평균 1.3%포인트 상승한다. 다만 항공과 철강 업계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사진은 2023년 10월1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수출 비중 높은 기업 위주 투자 유리

달러 강세뿐만 아니라 역대급 엔저(低)도 자동차, 철강, 반도체, 조선, 석유제품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경합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 기업의 수출 실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4월말 기준 원-달러 환율은 올해 들어 5.9% 하락했고, 엔-달러 환율은 12.4% 떨어졌다. 달러당 가치를 비교할 때 원화보다 엔화 가치 하락 폭이 더 컸다는 뜻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일 수출경합도 지수는 2012년 0.481에서 2022년에는 0.458로 떨어졌으나, 주력 수출 품목의 경우 슈퍼엔저가 우리나라 수출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세계시장에서 한일 수출경합도는 석유제품이 0.827로 가장 높다. 자동차와 부품도 0.658로 평균보다 훨씬 높다. 선박과 반도체, 철강도 0.5를 넘어 경쟁이 치열하다.

견고한 미국 경기와 쉽게 낮아지지 않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때 미국 달러는 당분간 강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안전자산 선호 현상에 따른 달러 수요를 부추길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우리나라는 유가 상승이 GDP 감소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큰 국가로 대외 에너지 의존도가 무역수지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원-달러 환율의 가파른 상승세는 주춤하고 있다. 시장에서도 원-달러 환율 1400원대는 다소 과도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원화가 단기간에 다시 강세로 돌아서기 어렵다는 환경을 인식한다면 달러 표시 예금, 단기채권, ETF 등에 대한 투자를 일정 부분 가져갈 것을 제안한다. 국내 주식으로는 수출 비중이 높아 실적 개선이 예상되는 기업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유리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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