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로 번진 기업사냥...2000억 필러사 흔드는 ‘꾼들’

  01 06월 2024

미용 필러 ‘가나필’ 제조사로 유명한 국내 강소업체 지씨에스(GCS)가 기업사냥꾼의 덫에 걸려들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나필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유럽 CE(적합성) 인증을 받은 필러 제품이다. 이를 내세워 지씨에스는 동남아·중동·남미 등 해외에 본격 진출했다. 작년에는 첫 기관투자를 유치하며 약 2000억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상장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그 이면에 분식회계 및 횡령·배임 의혹과 주가조작을 의심케 하는 정황이 포착됐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계약서와 보고서 등 송사 근거 자료에 따르면, 지씨에스 최대주주(지분율 48.4%)인 김창식 대표이사는 2022년 정아무개씨를 회사 부사장으로 뽑았다. 정씨는 상장 후 수익 배분을 노리고 지씨에스 상장 준비에 돌입했다. 그는 우선 김 대표에게 지씨에스 주식을 자신의 가족에게 넘기라고 지시했다. 대표의 지분율을 낮춰 상장을 유리하게 하려는 이유에서다. 이후 정씨는 자신과 친분 관계가 있던 회계법인을 외부감사인으로 두고 주식 이전 등의 처리를 맡겼다.

회계법인은 이 사실을 숨기고 재무제표를 공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씨에스는 지난해 4월 유안타 인베스트먼트 등 기관 4곳에서 190억원의 투자금을 받았다. 장외시장에서도 반응이 뜨거웠다. 개인 주주 수백 명이 주식을 사들여 그해 7월 최고가인 4만원(주식플랫폼 증권플러스 기준)을 찍었다.

5월28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지씨에스 서울지점 건물과 회사가 개발한 ‘가나필’ ⓒ시사저널 박정훈·GCS홈페이지

“실사보고서에 배임이 이렇게 많이 언급된 건 난생 처음”

그러다 지난해 말 상장 주관사가 실사에 돌입하면서 사달이 났다. 김창식 대표가 주식 이전을 “명의신탁”이라고 주장하며 정씨에게 반환 소송을 낸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정씨는 이를 “주식매매”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 외에 매출을 부풀리고 가장납입(실제 주식대금이 입금되지 않았는데 입금된 것처럼 위장한 것)을 한 정황도 드러났다. 가장납입은 상장에 치명적인 변수다. 김 대표의 횡령·배임 의혹도 불거졌다. 상장 자문을 맡았던 법무법인 태평양의 한 변호사는 “실사보고서에 배임이 이렇게 많이 언급된 사례는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정씨는 한때 주가조작꾼과의 연관성을 의심받은 적이 있다. 연결고리는 식료품 제조사 N사다. 2017년 검찰은 N사에 대한 횡령 등 혐의로 정읍썬나이트파 소속 사채업자 등을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2012년 N사에 사채를 빌려주고 경영권을 가져온 후 회사 자산을 팔아치우고 주가를 조작했다. 대부업체를 통해 쌍방울을 인수한 후 주가조작 도구로 삼은 조폭 출신 김성태 전 회장과 비슷한 수법이다. 결국 N사는 2013년 상장폐지돼 110여억원어치의 소액주주 주식이 휴지조각이 됐다. 당시 N사의 대표가 정씨였다. 그러나 정씨는 “나는 구조조정을 맡은 바지사장”이라고 주장해 형사처벌은 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시사저널에 “취재원을 안 밝히면 말할 수 없다”며 대화를 거부했다.

한편 김창식 대표는 부정적인 실사 결과에도 상장 작업을 이어갔다. 일단 자기 지분의 매각 의사를 밝혔다. 이를 위해 동종업계 상장사이자 지씨에스 2대 주주(5.7%)인 제이시스메디칼에 인수 의향을 물었다. 제이시스메디칼은 화답했다. 양사는 약속 이행을 위해 올 1월 구속력 있는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앞서 김 대표는 사임계도 제출했다.

그렇게 실타래가 풀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내 다시 꼬이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갑자기 사임을 번복하고 내부통제를 담당하던 임원 A씨를 내쫓았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외부 기업가 강아무개씨였다. 지씨에스 관계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강씨는 소위 ‘시장 애들’ 중 한 명이었다. 김 대표는 회사를 떠난 정씨 뒤를 이어 강씨를 올 2월1월 부사장으로 임명했다.

강씨의 임용 전후로 상황이 반전되자 ‘큰손’이 등을 돌렸다. 지씨에스 주요 기관투자가들은 투자를 위해 매입한 전환사채(CB)의 조기 상환을 촉구했다. 동시에 김 대표를 포함한 지씨에스 경영진에게 외부감사법 위반 등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빠른 투자금 회수를 위해 부동산 가압류도 신청했다. 지씨에스는 당장 200억원에 달하는 빚을 갚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강씨가 전면에 나선 건 이즈음으로 추정된다. 선박 부품 제조업체 이사 출신인 강씨는 유전자 검사업체 D사의 전무를 겸직하고 있다. 그는 2021년 대선 경선 때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를 공개 지지한 ‘금융시장 전문가’로 소개되기도 했다. 익명의 지씨에스 주주에 의하면, 강씨는 2월 중순 “D사에서 자금을 가져와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3월5일에는 주주간담회를 진행하며 비슷한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후 D사는 실제 자금을 조달했다. 3월21일 15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 발행을 공시했다.

 

지씨에스 대표 “가스라이팅 당해 오판…지분 매각 없다”

D사는 적자의 늪에 빠져있다. 2023년 당기순손실은 56억원으로 3년 연속 마이너스다. 작년 3월에는 회계관리 감사 결과 ‘비적정’ 의견을 받아 투자주의 종목으로 지정된 바 있다. 작년 11월 D사를 인수한 모기업도 당기순손실을 기록 중이다. 그에 반해 당초 김 대표의 지분 매입을 약속한 제이시스메디칼은 시가총액 9000억원 상당의 우량 기업이다. 작년 당기순이익은 251억원이다. 김 대표가 재정이 탄탄한 기업의 손길을 제쳐두고 위약금까지 감수하며 강씨와 손을 잡은 셈이다. 그 배경을 두고 의구심이 일고 있다.

업계에 정통한 한 M&A 전문 변호사는 “D사가 자금난에 처한 지씨에스를 ‘펄(pearl·진주)’로 쓰려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펄이란 호재성 공시를 가리키는 증권가 은어로, 주가 부양 재료로 활용되는 회사를 뜻하기도 한다. 강씨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일방의 주장에 대해선 노코멘트 하겠다”고 일축했다. D사의 전환사채 발행 목적에 대해선 “경영 정상화를 위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일련의 사건 중추인 김창식 대표를 5월29일 오후에 만났다. 그는 의혹 전반의 책임을 1월말 해임한 임원 A씨 탓으로 돌렸다. “제이시스메디칼과의 MOU와 사임계 제출은 A씨가 회사 위기를 언급하며 가스라이팅을 해서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이어 “회사가 잘되는데 최대주주인 내가 지분을 포기할 이유가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각종 혐의가 기재된 법무법인 태평양의 실사보고서에 관해선 “태평양이 A씨가 불러주는 대로 보고서를 작성했을 뿐”이라며 “분식회계나 배임·횡령 등은 전부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강씨의 개입 여부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김 대표는 “전환사채 상환 건의 경우 이미 150억원 넘게 갚았고 미상환 잔금은 약 45억원인데, 이는 해외 주주가 도와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A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A씨도 김 대표에 대해 무고죄로 맞고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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