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산업은행 워크아웃 위법” 판결에도  빈손만 남은 SLS조선, 왜?

  03 06월 2024

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5월2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SLS조선 강제 워크아웃(기업회생절차)에 관여한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음을 알리기 위한 자리였다. 고소 대상에는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과 유창무 전 무역보험공사 사장 등 산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관계자, 전직 SLS그룹 직원 등 13명이 포함됐다.

한때 10여 개 계열사를 거느렸던 SLS그룹 창업주인 이 회장은 2010년 이명박(MB) 정부의 기획 워크아웃 의혹을 주장한 인물이다. 이듬해인 2011년에는 청와대에 이런 의혹에 대한 진실 규명을 요구하며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 당시 여권 실세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사실을 폭로해 사회적 이슈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런 이 회장이 SLS조선 워크아웃으로부터 14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대중 앞에 선 까닭은 뭘까.

서울지방철도청 공무원이던 이 회장은 1992년 퇴직하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간판 제조업을 시작으로 철도 부품 제조업과 조선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2009년 기준 자산 규모 2조4000억원의 SLS그룹을 일궈냈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SLS조선을 인수한 건 2005년이다. 당시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경상남도 통영의 조선사인 신아SB를 인수해 SLS조선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국철 SLS그룹 회장은 5월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산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 관계자 등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시사저널 최준필

“검찰 수사 직후 산은이 자금줄 압박”

SLS그룹에 암운이 드리운 건 2009년 9월 이 회장의 비자금 조성 혐의에 대한 창원지방검찰청의 수사가 진행되면서다. 당시 수사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접수된 진정서에서 촉발됐다. 이 회장이 4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공직자들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수사에 대해 이 회장은 SLS그룹이 MB 정부 시절 야당이던 열린우리당 자금책으로 지목되면서 이뤄진 일종의 정치적 기획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검찰은 3개월에 걸쳐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다. 이 회장의 자택과 13개 계열사 등이 압수수색 대상에 올랐다. 그러나 수사 결과, 이 회장의 비자금 조성은 없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문제는 이 회장이 검찰 수사를 마친 직후인 2009년 12월 불거졌다. 산업은행 출신으로 SLS그룹 계열사 부사장으로 근무하던 김아무개씨가 SLS조선의 워크아웃을 신청했다며 경영권 및 주식 포기 각서를 내민 것이다.

이 회장은 워크아웃 신청 지시는 물론 이 안건을 승인하기 위한 주주총회 및 이사회도 열리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그는 당시 SLS조선은 워크아웃 대상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SLS조선은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으로부터 2009년 1월부터 11월까지 상시 신용위험평가에서 B등급 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2009년 말 기준 매출액 1조원 이상을 달성했고, 당기순이익은 2000억원 이상으로 예상됐다. 수주 잔고도 77척으로, 약 50억 달러(약 6조원) 규모였다.

당시는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글로벌 경제위기가 시작되며 해운 경기가 급락한 시기였다. 하지만 이 회장은 SLS조선에는 해운 업황의 영향이 사실상 없다고 설명했다. 거래처 대부분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말레이시아 등 산유국의 국영 선주들로 구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워크아웃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산업은행은 2009년 12월 SLS조선에 대한 경영관리계약을 체결하고 2010년 1월 경영관리단을 파견했다. 이후 SLS조선은 기존 572억원이던 자본금을 11억4500만원으로 무상감자한 액면가 5000원에 신주 56만3000주를 발행, 무역보험공사 등으로 대주주가 변경됐다. 이로써 이전 최대주주이던 SLS중공업(90.25%)의 지분율이 26.1%까지 낮아지면서 이 회장은 사실상 SLS조선의 경영권을 상실하게 됐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DB산업은행 본사 ⓒ시사저널 이종현

산업은행은 워크아웃 이전에 작성한 ‘SLS조선㈜ 현황’이라는 문건에서 기업회생절차가 필요한 주된 원인으로 자금 부족을 꼽았다. 그러나 이 회장은 SLS조선에 유동성 문제가 생긴 배경은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이유로 산업은행과 무역보험공사에서 계좌를 동결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2009년 말 기준 SLS조선 계좌에는 1980억원이 있었다. 경영정상화계획이행을 위한 약정이 체결된 2010년 4월까지 선박 선수금 및 인도금 1740억원이 추가로 입금됐다.

이 회장은 청와대에 ‘SLS조선 기획 워크아웃 의혹의 진실을 밝혀 달라’는 진정서를 수차례 제출했다.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 회장은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신 전 차관 등 당시 여권 실세들에 대한 뇌물 제공 사실을 폭로하고 나선 것이다. 이 회장은 청와대가 진실 규명에 나서지 않을 경우 여권 인사들의 비리를 추가로 폭로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진실 규명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 회장이 신 전 차관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이사회 의사록 조작된 사실 드러나

이후 이 회장은 SLS조선 워크아웃을 위한 이사회가 위법하게 이뤄진 정황을 포착했다. 그가 입수한 이사회 의사록에 따르면, 2009년 12월17일 경남 통영시와 창원시에서 SLS조선과 SLS중공업의 이사회가 동시에 개최됐다. SLS조선의 워크아웃 추진 승인과 SLS중공업이 보유한 SLS조선 주식 의결권을 산업은행에 위임한다는 안건을 의결하기 위한 자리였다. 의사록에는 이날 열린 두 기업의 이사회에는 이 회장과 SLS그룹 임원들이 함께 출석했으며, 모두 오후 1시에 폐회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자신과 SLS그룹 임원들이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이사회 개최 사실조차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실제 통영시와 창원시에서 개최된 이사회에 동시에 참석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의사록이 위조된 흔적도 발견됐다. 의사록에 이 회장 것이 아닌 인장이 사용됐는가 하면, 횡령 등 혐의로 수감 중이던 이아무개 전 SLS조선 대표의 기명날인이 들어가 있기도 했다.

경상남도 창원시에 위치한 SLS중공업 전경 ⓒ시사저널 사진 자료

산은 “4000억원 지원했지만 회생 실패”

특히 이 회장 경영권 상실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2010년 5월17일자 무상감자를 위한 주주총회와 같은 해 7월1일자 신주 발행을 위한 이사회 관련 문건에서도 조작 정황이 확인됐다. 이 회장은 이를 근거로 산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등을 상대로 주주권 부존재 소송을 제기했다. 10년여에 걸친 재판 끝에 이 회장은 2022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재판부는 이 회장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상감자와 신주 발행을 결정한 이사회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그 결과 이 회장은 12년 만에 SLS조선 대주주 지위와 대표권을 회복했다.

그러나 상처뿐인 승리에 불과했다. 산업은행은 워크아웃 돌입 직후 SLS조선의 전체 수주 물량 77척 중 해운 호황기에 고가 수주한 47척은 건조를 취소했다. 수주액 기준 19억 달러(약 2조5000억원) 규모였다. 2010년 10월 기준 SLS조선이 보유 중이던 현금 8000억원 중 대부분은 계약 취소에 따른 선수금과 연 7%의 가산이자 반환 등에 사용됐다.

건조를 취소한 47척 중 제작을 시작한 30여 척의 선박 기자재는 모두 고철로 처리해 매각했다. 이 회장은 이때 발생한 손실만 38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47척을 제외한 나머지 30척 중에서도 발주처에 정상 인도된 선박은 9척에 불과했다. 나머지 21척은 건조 취소 후 국제 선가보다 저가에 재판매하는 등의 수순을 밟았다. 그 결과 SLS조선이 입은 손실을 1조4200억원대로 이 회장은 보고 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연중무휴로 24시간 운영되던 SLS조선 조선소는 2010년 2월부터 8개월 동안 가동이 멈췄다. 이 과정에서 대다수 제조인력이 이탈하면서 생산 기반이 완전히 붕괴됐다. 이후 SLS조선은 산업은행이 수립한 경영정상화계획과 달리 새로운 수주를 이뤄내지 못했다. 그 결과 SLS조선에는 2015년 11월 파산 선고가 내려졌다.

이 회장이 이번 고소를 진행한 배경은 위법한 워크아웃으로 건실한 기업을 무너뜨린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이 회장은 “이번 검찰 수사와 재판을 통해 산업은행과 무역보험공사의 불법이 소상하게 밝혀지면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SLS조선이 2009년 12월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모든 금융채무를 동결해 주고 4000억원을 추가로 지원해 줬다”며 “그럼에도 워크아웃이 실패해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파산 절차를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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