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금융사고…책무구조도로 막을 수 있을까

  12 06월 2024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오는 7월 책무구조도 도입을 골자로 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된다. ⓒ시사저널 이종현

최근 우리은행에서 100억원대 횡령사고가 발생했다. 올 들어 은행권에서 금융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던 터라 은행 내부통제 부실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책무구조도를 다음 달부터 도입한다.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실효성과 관련해 의견이 분분하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오는 7월 책무구조도 도입을 골자로 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된다. 금융지주와 은행의 경우 내년 1월2일까지 책무구조도를 작성해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나머지 금융회사의 경우 업권과 자산별로 제출 기한이 차등 적용된다.

개정안의 핵심은 금융사의 임원이 담당하는 업무별로 책무를 배분한 문서인 책무구조도를 만드는 것이다. 책무구조도는 개별 임원에게 담당 업무에 대한 내부통제 관리 책임을 배분하고, 사고가 발생하면 명확한 책임을 묻도록 규정하는 문서다. 여기엔 사외이사를 제외한 임원과 임원이 아닌 준법감시인·위험관리책임자도 포함된다. 또한 임원에 준하여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에게도 책무를 배분할 수 있다.

대표이사와 경영진에 대해선 세부 내용도 규정돼 내부통제 관리의무가 특히 강화된다. ‘임원의 내부통제 관리의무 수행 점검’, ‘임직원의 법령 등 위반을 초래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요인 또는 취약분야에 대한 점검’, ‘임직원의 법령 등 위반이 장기화·반복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 등 내부통제 총괄 관리조치를 해야 한다.

금융업권별 책무구조도 제출 시기 ⓒ금융위원회 제공

이는 내부통제 관리 강화를 위해 금융사 임원이 책임져야 하는 범위와 내용을 사전에 명확히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현재도 금융사에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하고 있지만, 최종 책임자에 대해선 명확한 책무 규정이 부족하다는 점이 지적돼 왔다. 또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할 뿐 준수할 의무는 없었다. 이러한 하자로 인해 발생하는 금융사고는 많은 반면 처벌 근거가 부족해 관계자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웠다.

실제 지난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의 경우 불완전판매에 따른 상당한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지만, 임원을 처벌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법원 판결로 금융당국 제재가 취소되기도 했다. 당시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금감원을 상대로 낸 징계처분 취소소송에 대해 대법원은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한 이상 그 내부통제기준을 일부 준수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를 처분사유로 볼 수 없다”며 손 전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앞으로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이 같은 사례가 다시 나오긴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내부통제부터 준법감시, 소비자보호 등 모든 기능과 업무에 어떤 임원이 책임을 지는지 소재가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임원은 소관 책무에 대해 내부통제 관리 의무를 부여받게 됨에 따라 실질적인 관리를 하게 된다. 금융권 전체의 내부통제 행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역시 지난 4월 주요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만약 홍콩 ELS(주가연계증권) 사태 상황에서 책무구조도가 있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책무구조도 도입이 금융사고 방지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을 시사했다.

금융위원회 ⓒ연합뉴스

빈번한 직원 ‘일탈’ 사고…임원이 고삐 죌 수 있을까

이렇듯 임원들의 책무가 강화된다는 점에서 금융권 내부통제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가 기대된다는 데엔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연이어 터지고 있는 일선 영업점에서의 금융사고를 실질적으로 방지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올 들어 농협·국민·우리은행에서 터진 금융사고의 내용을 종합하면 모두 지역 지점에서 한 개인에 의해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올해 농협은행에서 발생한 3건의 업무상 배임 등 사고의 경우 지역 지점 직원의 대출 과정에서 발생한 사례다. 국민은행에서 드러난 2건의 배임 사고 역시 지역 지점에서의 과다 대출 등이 골자였다. 지난 11일 확인된 우리은행의 횡령 건도 한 지역 지점 직원이 대출 관련 서류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일선 부서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경우 해당 직원이나 부서가 아닌 이상 책무를 가진 임원이 사전에 감지하기 어렵다. 농협은행에서 발생한 1건의 사고를 제외하면, 모두 은행 차원의 사후 검사 등을 통해 발견됐다는 점도 이를 보여준다.

또한 개별사고에 대한 책무도 인사관리, 공문관리, 모니터링 미흡 등 다양한 종류의 시스템적 하자에서 비롯되는 만큼 그 책임도 여러 책임자와 임원에 분산되는 특징이 있다. 이런 복잡함이 책무구조도 작성은 물론 감독 과정에서의 어려움으로까지 연결될 가능성이 이다. 결국 영업점까지 내부통제 강화 효과가 닿지 못하면서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영업점에서 발생하는 금융사고를 책무구조도만으로 예방하기는 무리라고 보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오태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책무기술이 너무 단순화되면 사실상 책무가 선언적 성격에 그칠 수 있어 책무구조도 도입 취지가 퇴색되고 유사시 책임을 명확히 묻기 어려운 기존의 한계가 다시 나타날 수 있다”며 “책무구조도 도입이 제재보다 예방에 더욱 방점을 두기 위해서는 전사적 내부통제 비용을 가늠하고 이를 토대로 기관별로 갖춰야 할 내부통제의 합리적 수준을 판단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면책 조항: 이 글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이 기사의 재게시 목적은 정보 전달에 있으며, 어떠한 투자 조언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침해 행위가 있을 경우, 즉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또는 삭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