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차 수요 여전···완성차 업계, 엔진 개발 멈추지 않는다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는 기술은 다양합니다. 우리가 선택하는 기술은 단지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다양한 상황과 요구사항을 유연하게 수용해야 합니다.”

일본 완성차 업체 스바루(Subaru)의 아쓰시 오카시(Atsushi Osaki) 대표이사(최고경영자·CEO)가 5월28일 토요타, 마쓰다와 함께 공동 워크숍을 개최한 후 밝힌 내용이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엔진을 제거하지 않고 발전시켜 나가며 고객에게 다양한 자동차 구동장치(파워트레인) 선택지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다. 토요타, 마쓰다를 비롯한 일본차 3사는 이 같은 목표를 공유하며 신형 엔진 개발을 선언했다.

토요타 등 일본차 3사는 신형 엔진을 공동 개발한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로이터연합

‘내연기관차 개량’이 탄소중립 전략

일본차 3사의 이번 선언은 해외 업체에 비해 배터리 전기차(BEV) 수요 대응이 늦은 것으로 평가받는 현지 업체들의 아전인수식 선언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전기차 수요 증가세가 가격, 운행상 제한 등의 요소로 인해 주춤한 가운데 내연기관차 개량이 완성차 업계의 현실적인 탄소중립 전략으로 주목받는 중이다.

6월5일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BEV 판매량은 전년(730만 대) 대비 30.1% 증가한 930만 대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전체 완성차 판매량(7667만 대) 대비 BEV 비중도 10.0%에서 12.4%로 상승했다. 이는 과거에 비해 완성차 시장이 공급, 소비 성향 측면에서 성숙해진 결과로 분석된다. 제조사들이 탄소중립을 목표로 전기차를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소비자들은 여전히 내연기관차보다 비싸고 운행 패턴이 다른 전기차를 각자 목적에 따라 적극 구매·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BEV 판매 신장세가 최근 느려져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글로벌 BEV 판매대수의 전년 대비 증가 폭은 2020년(200만 대) 25.0%에서 2021년(470만 대) 135.0%까지 늘어났지만 이후 55.3%, 27.4%로 급감했다. 최대 시장인 중국의 BEV 판매대수는 전년(440만 대) 대비 22.7% 증가했는데 이전 연도 증가 폭 63.0%에 비해 크게 축소됐다. 한국(-0.1%), 노르웨이(-24.4%) 등 일부 국가에선 전기차 판매실적이 오히려 감소하기도 했다.

이는 차량 구매 지원 정책, 제조 공급망, 충전 인프라 등 전기차 시장 여건과 소비자들의 전기차 구매 경향의 변화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NEF는 “세계의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를 포함한) 전기차 시장 중 30%의 전기차 채택률이 아직도 5%에 못 미친 상황”이라며 “전기차 모델 가짓수 부족, 충전 인프라 부족, 전기차 관련 정책 미비 등이 시장 (성장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판매실적 증가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어 BEV 시장 성장성이 여전하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하지만 중국 저가 BEV 공세에 따른 경쟁 격화, 시장별 수요 편차 등에 따른 업체별 전기차 수익성 약화는 중장기적 전기차 전략을 수정하도록 제조사들을 압박하는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포드는 대형 전기차 출시 일정을 미루고 2030년까지 신규 하이브리드차 개발·출시를 선언하는 등 사업 로드맵을 수정했다.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사업 전략 수정은 자연스럽게 내연기관차 투자 비중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여권구 수원대 교수 겸 한국자동차공학회 에너지 및 배기 부문 회장은 “(미래 모빌리티의 발전 방향 중 하나인) 친환경 모빌리티의 해답이 배터리 전기차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많은 우려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며 “합성연료(e-fuel)를 사용한 내연기관차, 하이브리드차를 병행 발전시키는 등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내연기관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일부 완성차 업체는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 둔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내연기관 연구개발(R&D) 비중을 늘리는 등 사업 계획을 조정했다.

 

“적(敵)은 내연기관이 아닌 탄소”

토요타, 스바루, 마쓰다는 그간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탄소중립 지향 추세 속에서 적대시돼온 내연기관을 하나의 수단으로 새롭게 정의했다. 토요타가 “탄소가 적이다”는 슬로건을 강조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일본차 3사는 현재 엔진의 고효율, 고출력, 소형화를 공통적으로 지향하고 있다. 이전보다 작아졌지만 강력해진 엔진은 차량 디자인과 공기역학적 성능 개발의 유연성을 높여 탄소 배출량을 더욱 저감할 수 있다. 또한 3사는 휘발유, 경유 등 화석연료에서 벗어나 e-fuel, 바이오 연료, 액체수소 등 다양한 연료로 구동 가능한 엔진을 개발한다는 전략이다.

사토 고지 토요타 사장은 “엔진은 현재의 형태로는 살아남을 수 없고 변화가 필요하다”며 “내연기관을 하나의 솔루션으로 간주하고 기술 개발을 중단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순수 내연기관차의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BEV 파워트레인과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내연기관 기술 개발에 힘쓰는 중이다. 이 일환으로 현대차그룹의 스마트스트림 엔진에 담긴 기술과 하이브리드 시스템, 전기차용 발전모듈을 결합해 차량 효율 향상을 추진 중이다. 또한 탄소중립 연료인 e-fuel 등 신기술을 개발하는 등 엔진의 새로운 활용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올해 들어 사내 전동화 관련 부서에 흩어져 있던 내연기관 연구개발 인력을 다시 모아 엔진 개발 역할을 부여했다. 현대차그룹은 내연기관이 전동화 시대에도 쓰일 수 있고, 시장 요구에 따라 내연기관 기술이 변화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임혁 현대차그룹 전동화구동시험1팀 파트장은 “최근 하이브리드차와 주행거리연장 전기차(EREV)가 생애주기(LCA), 탄소배출흐름(Well-to-Wheel) 관점에서 우수한 효율성과 환경성 등으로 재조명받고 있다”며 “엔진과 PE 시스템을 최적으로 조합한 엔진 개발 콘셉트를 제시하면 더 나은 친환경 파워트레인 시대를 열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르노코리아자동차의 모기업인 르노그룹은 2030년 전동화 목표를 고수하지만 내연기관 개발에 지속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5월말 중국 완성차 업체 길리(Geely)와 50%씩 지분 투자해 엔진 개발 합작법인 호스 파워트레인(Horse Powertrain)을 설립했다. 합작사는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엔진, 변속기, 배터리 솔루션을 개발·양산할 방침이다. 르노와 길리는 호스 파워트레인 제품을 직접 사용할 뿐 아니라 볼보, 프로톤, 닛산 등 관계사에 공급하며 내연기관과 전동화 기술의 공존을 지향한다는 계획이다.

르노그룹은 “2040년에도 여전히 내연기관 엔진에 의존하는 자동차가 세계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런 가운데 탈탄소화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고효율 내연기관 엔진, 저탄소 e-fuel, 수소 등을 포함한 여러 파워트레인 기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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