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위의 기이한 ‘72초 면죄부’…‘김 여사 명품백 종결’ 후폭풍

  13 06월 2024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6월12일(현지 시각)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드라마극장에서 열린 '한-카자흐스탄 문화 공연'에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함께 참석해 양국 예술인과 고려인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내용도, 형식도 기이한 브리핑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식당’에서 기자들을 만나 “최재영 목사가 외국인이기 때문”이라는 해명을 덧붙였다. 반부패 총괄 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가 국민적 의혹 중심에 있는 사건을 처리한 방식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해외 순방을 떠난 당일 ‘72초 브리핑’을 열고 조사 종결을 선언한 권익위를 둘러싼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권익위가 당사자 조사조차 없이 섣불리 마침표를 찍으려 했다는 비판이 쏟아지면서 검찰 수사와 특검으로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발표도, 해명도 ‘부실 조사’ 자인한 권익위

권익위는 지난 10일 참여연대가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신고한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사건을 종결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2월19일 사건을 접수한 후 최장 90일로 정해진 조사 기한을 연장한 끝에 내놓은 결과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을 위해 출국한 날 돌연 브리핑을 공지했고, 정승윤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이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배우자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어 종결 결정했다”며 관련 법 조항을 언급한 뒤 ‘72초 대국민 통보’는 마무리됐다. 

핵심 쟁점인 대통령 직무 관련성에 대한 판단 여부, 윤 대통령이 명품가방 수수를 인지한 시점과 그에 따른 조치 사항, 법적 쟁점과 처벌 가능성 등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6개월 간 진행한 조사가 출발선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공전했다는 점을 시인한 브리핑이었다.

정승윤 국민권익위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이 6월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지원금 주요 부정수급 사건 및 집중신고기간 운영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논란이 커지자 정 부위원장이 다시 나섰다. 공식 브리핑이나 자료 배포가 아닌 오찬 자리에서 이번 결정에 법적 하자나 문제가 없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정 부위원장은 전날 “윤 대통령의 직무 관련성을 고려할 때 이번 사건에서 대통령의 신고 의무는 없다”며 “다수 의견은 (명품가방 선물이) 대통령과 직무 관련성이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목사가 건넨 300만원 상당 디올백은 대통령 직무와 관련이 없기 때문에 이를 대통령이 인지한 후 신고해야 할 의무도 없다는 것이다. ‘직무 관련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최 목사가 김 여사에 가방을 건넨 전후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청탁이나 대가 관계가 존재했는지, 두 사람이 실제로 만나게 된 경위가 어땠는지를 면밀히 파악해야 하지만 당사자에 대한 조사는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권익위는 이에 대해 “아무런 범죄 혐의도 없고 처벌할 수도 없는데 소환하면 권익위의 직권남용”이라며 “자료를 충분히 검토해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권익위의 이 같은 설명은 대통령실의 기존 입장과는 상충된다. 대통령실은 앞서 최 목사가 김 여사에게 건넨 명품가방을 대통령기록물로 분류해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기록물은 대통령 ‘직무’와 관련 있다고 판단될 때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라 정식 절차를 거쳐 보관된다. 따라서 권익위가 대통령실 판단과 달리 직무와 관련성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선 대통령실과 윤 대통령, 김 여사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사안이었지만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2023년 11월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가 공개한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 영상의 한 장면 ⓒ서울의 소리 유튜브 화면 캡처

정 부위원장은 ‘만약’을 전제로 미국 국적의 재미교포인 최 목사가 건넨 명품가방의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더라도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최 목사가 ‘외국인’인 만큼 대통령이나 배우자에게 건넨 선물은 즉시 국가가 소유하는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된다는 것이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정의된 ‘대통령선물’은 공직자윤리법 제15조를 따르는데 해당 조항에는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외국인(외국단체 포함)에게 선물을 받으면 지체 없이 소속 기관·단체의 장에게 신고 및 인도하도록 돼 있다. 외국인이나 단체로부터 선물을 받더라도 신고·인도를 하도록 명시돼 있다는 점에서 권익위가 이를 확인했어야 하지만 이 같은 절차는 모두 생략됐다.

김 여사 사건 종결을 결정한 권익위 전원위원회에서도 제한된 내용만으로 사건 전반을 판단하는데 한계가 있고, 청탁금지법 외 다른 법률을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사 이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권익위는 이를 ‘소수 의견’이라고 밝혔지만, 15명 중 7명은 종결 처분에 반대했고 “세계적 망신이 될 것”이라는 탄식도 나왔다고 한다. 

권익위는 2016년 8월 공직자 배우자의 경우 부적절한 금품수수가 혐의가 확인될 경우 청탁금지법이 아닌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또는 변호사법 등 다른 법률을 적용해 처벌받을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은 바 있지만 이번엔 달랐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동기인 유철환 권익위원장과 검사 출신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한 정 부위원장 등 ‘친윤’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권익위가 ‘정치적 결론’을 내려놓고 사안에 접근한 것이라며 사퇴를 압박하고 나섰다.   

6월11일 서울 종로구 국민권익위원회 정부합동민원센터 앞에서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위반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한 국민권익위원회를 규탄하고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재영 “청탁 부정 않는다”…참여연대 “결정문·회의록 공개해야”

최 목사는 이날 주거침입 및 명예훼손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 출석하며 김 여사에게 ‘청탁’ 목적으로 선물을 건넨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김 여사에게 청탁 목적으로 다양한 선물을 건넨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며 “거기에 대해 받을 처벌이 있다면 얼마든지 받을 것이고, 김 여사도 저처럼 포토라인에 서 정확하게 해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익위의 사건 종결 처리에 대해 최 목사는 “무모한 결정을 내려 청렴도를 훼손했다. 권익위원장과 부위원장이 권력에 아부하는 아첨꾼 아닌가 생각한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권익위는 제가 미국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외국인이 주는 선물은 국가기록물로 기록된다’는 궤변에 가까운 답변을 내놨다”며 “거기서 말하는 외국인은 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외교관, 국가 수장 등의 외국인을 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권익위의 결정에 강력 반발하며 전원위의 사건 처리 관련 결정문과 회의록, 위원들에게 제공된 각종 자료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참여연대 측은 “청탁금지법은 뇌물을 받고도 직무관련성 입증이 어려워 처벌할 수 없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라며 “공직자 등이 직무 관련성과 무관하게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지 말라는 취지이며 배우자를 통한 금품 수수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민권익위가 제재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청탁금지법 위법 여부조차 판단하지 않은 것은 반부패전담기구로서 역할을 망각하고 직무를 유기하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태”라고 직격했다.

전담팀을 구성해 명품가방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권익위의 ‘종결’ 처분과 상관없이 절차대로 수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권익위가 종결 결정을 한 경위와 법리적 해석 등에 대해서는 별도로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야당은 특검 화력을 더하고 있다. 권익위원장을 지낸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말도 안 되는 (권익위) 처분에 대한 경위와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며 “특검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보협 조국혁신당 수석대변인은 “윤 대통령의 대선캠프에서 일한 정승윤 부위원장이 명품가방 수수에 대해 ‘대통령 직무와 관련성이 없어 대통령이 신고할 의무도 없다’는 망언을 했다”며 “권익위는 이름을 ‘건희위원회’로 이름을 바꾸라는 비난을 들어도 싸다. ‘건희위’가뇌물과 청탁을 권장하는 꼴”이라고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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