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살 롯데월드 흰고래, 다시 넓은 바다서 헤엄칠 수 있을까요세 줄 요약이 뉴스 공유하기본문 글자 크기 조정

  23 10월 2023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 있는 벨루가 '벨라'

[롯데월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우와∼ 진짜 귀엽다", "나온다! 웃고 있는 것 같아"

20일 오후 서울 잠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벨루가(흰고래)관. 열한살 암컷 벨루가 '벨라'가 뒤쪽 휴게공간에서 꼬리를 흔들며 유유히 헤엄쳐 나오자 곳곳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관람객들은 길이 4m 남짓의 하얗고 매끈한 벨라가 공기 방울을 내뿜으며 수조 유리창 앞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연신 카메라 버튼을 눌러댔다.

관람객들의 감탄과 환호가 가득한 이 공간은 그러나 롯데월드와 시민단체 간 갈등의 현장이기도 하다.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 활동가들이 작년 말 벨루가 전시 수조에 '전시 즉각 중단하라'는 문구의 대형 현수막을 붙이며 방류 촉구 시위를 벌였다가 '7억원의 피해를 입었다'며 롯데월드로부터 고소당한 것이다.

귀여운 외모 덕에 관람객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벨라를 활동가들은 왜 풀어달라고 호소하는 것일까.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수영하는 벨루가 '벨라'

[촬영 이미령]

◇ "비인도적 포획·비좁은 수족관…더는 벨루가를 죽게 할 수 없다"

벨라는 2012년 러시아 지역 북극해에서 태어나 러시아의 틴로(TINRO) 연구소를 거쳐 국내에 반입됐다.

정확히 언제 어느 해역에서 잡혀 어떤 경로로 연구소를 거쳤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국내외 시민단체는 태어난 지 몇해 지나지 않은 새끼 벨루가가 무리하게 포획돼 전시 목적으로 전 세계로 팔려 나가고 있다며 비인도적 포획과 수출 문제를 거듭 지적해 왔다.

러시아 연구진이 2014년 작성한 보고서에는 1년의 조사 기간 포획된 벨루가 81마리 가운데 34마리가 포획 도중 사망했다는 기록도 있다. 7마리는 포획 후 이동 중 죽었다.

4년 전에는 러시아 연해주 나홋카시 인근에서 벨루가 87마리를 포함해 약 100마리의 어린 고래가 갇힌 일명 '고래 감옥'이 발견돼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러시아의 고래 감옥

[타스=연합뉴스]

이 때문에 동물권 단체들은 롯데월드가 러시아에서 벨루가 3마리를 들여온다고 밝힌 10년 전에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

한 번에 수십m까지 잠수하는 특성을 가진 벨루가에게 고작 7.5m 깊이 수조 생활이 '감옥'이나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4년 벨라와 함께 수족관 생활을 시작한 수컷 벨루가 2마리 가운데 '벨로'가 2016년 4월 폐사하고(당시 5세), '벨리'마저 2019년 10월 죽어(당시 12세) 벨라는 꼬박 4년을 혼자 지냈다.

동물권 단체들은 "큰 바다에서 뛰어놀아야 할 고래가 좁은 수족관에 갇혀 지내면서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더 이상의 죽음을 지켜볼 수는 없다"며 하루빨리 벨루가를 바다로 돌려보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전남 여수 아쿠아플라넷에 살던 '루이'(2020년 7월 폐사)·'루오'(2021년 5월 폐사)와 거제씨월드의 '아자'(2020년 11월 폐사) 등 다른 벨루가 3마리도 국내에서 죽었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촬영 안 철 수]

◇ "현실적으로 바다쉼터 찾기 어려워" vs "충분한 노력 안해"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롯데월드는 2019년 10월 벨라를 방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벨라는 4년이 지난 지금도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 갇혀 있다.

롯데월드가 마냥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어린 시절 포획돼 야생의 기억이 거의 없는 벨루가를 당장 원서식지로 돌려보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대신 원래 살던 바다와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생츄어리(바다쉼터)로 보내는 방법이 있다. 원서식지와 비슷한 수온에 바다가 육지 쪽으로 들어간 만(bay) 지형에서 모니터링을 통해 적당히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롯데월드는 전 세계 유일한 벨루가 생츄어리인 아이슬란드 헤이마이섬 생츄어리와도 이송 계획을 논의해왔다.

그러나 코로나19로 한동안 논의에 진전이 없었다. 4년 전 중국 상하이의 한 오션월드 수족관에서 헤이마이섬 생츄어리로 이송된 벨루가 2마리의 건강 상태가 악화해 줄곧 실내 시설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도 이송을 고민하게 하는 대목이다.

롯데월드몰 앞에서 벨루가 방류 촉구 1인시위 중인 핫핑크돌핀스 황현진 대표

[촬영 이미령]

동물권 단체는 이러한 설명이 롯데월드가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벨루가 쉼터를 찾지 못한 데 대한 해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정말 이송 의지가 있다면, 수조에 익숙해진 벨라가 생츄어리에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핫핑크돌핀스 황현진 공동대표는 "즉각적으로 이송할 수 없다면 당장 전시를 중단해서라도 과도한 인공조명이나 음악을 벨루가로부터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방류기술위원회에 참여 중인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벨루가가 자의식이 있는 동물이고 낯선 사람을 보고 가지는 긴장과 자극도 필요하다"며 "하루 종일 사육사만 보고 관람객과 단절된 채 지내게 하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해외 생츄어리로의 이송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데 효율적으로 추진되지 않는 것이 가장 답답한 상황"이라며 "롯데월드가 벨루가를 위해 어느 정도 노력을 하고 있는지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벨루가를 구경하는 아쿠아리움 관람객들

[촬영 이미령]

벨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최근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벨루가관 옆에는 "현재 벨루가는 새로운 바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야생 적응을 위해 먹이 훈련과 일 10회 이상의 자연 습성 행동풍부화(동물원 동물에게 야생에서의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를 진행한다는 내용이다.

롯데월드 관계자는 "다양한 놀이를 통해 스트레스 예방에 집중하고 아쿠아리스트와 수의사가 매일 정기 검진을 하고 있다"며 "롯데월드가 (벨루가 방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공개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논의하는 장을 마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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