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페디엠?…"과로 문화 속 은퇴만 기다린다"세 줄 요약이 뉴스 공유하기본문 글자 크기 조정

  10 11월 2023

저녁이 있는 삶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라틴어 '카르페디엠'(Carpe Diem)은 '오늘을 잡아라'라는 뜻으로 로마시대 작가 호라티우스가 한 말이다. "오늘을 잡아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에서 따온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솔 벨로의 대표작 '오늘을 잡아라'(Seize the day)도 호라티우스의 말에서 비롯했다. 수많은 격언과 예술 작품은 '지금 당장 현재를 즐기라'고 권한다. 그렇다면 현대인은 고대인의 오래 묵은 지혜에 맞춰서 잘 살아가고 있을까.

한 노인이 딸을 만나 해외 여행길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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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만을 꿈꾸는 사람들…"활기 없는 삶"

서울에 사는 40대 직장인 A씨. 은퇴를 꿈꾸지만, 커가는 자녀의 얼굴과 최근 통장에서 빠져나간 대출금을 떠올리며 오늘도 회사에 출근한다. 그는 퇴직 후에는 자유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발걸음에 속도를 낸다. 오전 7시도 안 된 시간에.

A씨만 은퇴를 기다리는 건 아니다. 은퇴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보편적인 기다림이라고 독일 저널리스트 테레사 뷔커는 말한다. 그러면서 "은퇴만을 기다리며 보내는 삶은 활기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신간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원더박스)을 통해서다.

그에 따르면 현대인은 퇴직 이후로 삶의 자유를 '유예'한다. "우리가 원하는 삶의 방식대로 시간을 형성할 수 있다는 인식을 향해 나아가야"하지만 정작 "시간이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방향"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바쁜 일상에 치이면서도 우린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그러면서 시간이 여유로운 은퇴만을 꿈꾼다.

저자는 질문한다. "왜 우리는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밀어두는 걸까?" 노동시간이 지속해서 줄어드는데도 말이다.

추위 속 출근길

[연합뉴스 자료사진]

◇ 노동 시간은 줄지만…"업무 강도는 세진다"

책에 따르면 산업혁명이 활발했던 200여년 전만 해도 공장 노동자들은 하루 14~16시간 일했다. 하루 8시간 근로제는 독일에서 1918년 법제화됐다. 주 40시간 근로제는 1967년 도입됐다.

1990년대 이후부터는 주 30~32시간만 일해도 충분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제언이 꾸준히 제기됐다. 아이, 부모에 대한 돌봄을 제대로 하려면 노동시간이 더 줄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갔다. 노동시간이 주는 추세지만 업무강도는 더욱 세지고 있어서다.

2019년 독일 노동조합총연합의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 53%가 직장에서 시간 압박을 자주 느낀다고 답했다. 3분의 1은 전년도에 견줘 "시간이 더 많은 것도 아닌데 확실히 더 많은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 결과, 근로자들은 사무실에 더 오래 앉아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휴식 시간도 더 자주 건너뛰는 것으로 조사됐다.

맨발로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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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명을 단축하는 일과 빈곤

강도 높은 노동은 과로로 이어지고, 과로는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세계보건기구(WHO)·국제노동기구(ILO)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를 보면 주 55시간 이상 근무는 주 35~45시간 근무에 견줘 심장병과 뇌졸중의 위험을 크게 증가시킨다.

이로 인해 2016년 전 세계적으로 약 74만5천명이 숨졌다. 이 연구 데이터를 수집할 당시 전 세계 인구 약 9%가 주 55시간 이상을 일했다.

독일에서 전일제 근무자는 주 40시간을 일하지만, 정치인·의사 같은 직업 종사자는 주 50시간 이상 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봉이 10만 유로 이상인 독일 근로자는 주당 평균 6시간 근무를 초과한다.

가난한 계층에 속한 이들도 과로하긴 마찬가지다.

폴란드 택배 노동자는 2021년 주당 85시간을 일했다고 보고했다. 독일에서 근로빈곤층에 속하는 이들은 여러 직업을 갖거나 극도로 긴 시간을 일해도 생필품과 집세를 충당할 만한 수입을 얻지 못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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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후를 위해 시간은 저축할 수 없어"

돌봄까지 생각하면 노동시간은 더 없이 길어진다.

한 연구에 따르면 자녀가 있는 이들은 돌봄 작업을 일주일에 최대 15시간을 쓴다. 이들은 퇴근 후나 주말에 몰아서 가정일을 처리한다.

한스 뵈클러재단 경제사회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3분의 2가 전일제 일자리에 종사하는 여성은 주당 26시간, 남성은 34시간으로 노동시간이 줄어야 한다고 답했다.

독일 여의사협회 회장 크리스티안 그로스는 "주당 40, 50시간 이상 일하면서 가정과 아이들을 돌볼 수 없다"고 말했다. 독일 교육과학노조 이사 프라우케 귀츠코브도 "주당 30~32시간만 일해도 충분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활기찬 삶을 살려면 일을 줄이고, 자유시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돈은 저축할 수 있지만 시간은 저축할 수 없다"는 점에서다.

"친구를 만나거나 취미를 위한 시간을 현재에 가지지 못하는 사람은 삶에서 놓친 부분을 노년기에 간단히 만회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살지, 노년기가 자신의 소망과 얼마나 크게 일치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김현정 옮김. 4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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