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는 태자당도 용서하지 않는다”

  07 04월 2024

3월23일 ‘미국의 소리(VOA)’ 중문판은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실었다. 류야저우 전 인민해방군 공군 상장(上將)이 무기징역형에 처해졌다는 것이다. 류야저우는 2021년 12월에 이미 가족을 통해 ‘당국에 의해 실종됐다’는 소문이 나왔다. 2022년 3월에는 홍콩 ‘명보(明報)’가 “류야저우가 현역 시절 거액의 부정 수뢰 혐의로 당국에 체포됐고 여생을 감옥에서 보낼 중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인민해방군 상장은 한국의 대장에 해당하는 군 고위직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AP 연합
류야저우 전 인민해방군 공군 상장ⓒAP 연합

퇴임 태자당 장군의 이례적인 무기징역형

류야저우는 2017년에 군문을 떠났다. 그럼에도 여러 언론이 주목하는 것은 그가 가진 배경 때문이다. 류야저우의 아버지는 중일전쟁, 국공내전, 한국전쟁 등에 참전했던 류젠더 장군이다. 또한 부인은 리셴녠 전 국가주석의 딸인 리샤오린이다. 부부가 전형적인 중국의 ‘태자당(太子黨)’인 것이다. 태자당은 사회주의 중국을 건국한 공산당 핵심 멤버들의 자녀를 가리킨다. 시진핑 국가주석도 아버지가 리셴녠과 같이 덩샤오핑 통치 시기에 중국을 주름잡았던 공산당 8대 원로인 시중쉰이다.

중국에서 퇴임한 태자당 출신을 무기징역의 중형에 처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한 부모의 공로를 인정해 배려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또 다른 8대 원로인 보이보의 아들 보시라이도 무기징역형을 받아 현재 감옥에 있다. 그러나 보시라이는 시 주석의 정치적 라이벌이었고, 체포 당시 충칭시 당서기였다. 2012년 3월 왕리쥔 충칭시 부시장의 미국 망명 시도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뇌물수수·공금횡령·직권남용 등 혐의는 대륙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이는 보시라이가 자살골을 넣은 몰락에 가까웠다.

그에 반해 류야저우에 대한 혐의와 처벌은 중화권 언론에서 의문을 표시할 정도로 작위적이다. VOA의 보도에 따르면, 구체적으로는 리셴녠기금회 등의 자금을 횡령하고 문란한 사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해 2월에는 시 주석이 “류야저우가 정치적 야심이 있다”면서 “철저히 분쇄해야 한다”고 말했다. VOA는 시 주석이 이런 반응을 보인 배경으로 류야저우가 걸어온 행적을 손꼽았다. 류야저우는 1952년생으로, 문화대혁명 시기이던 10대 중반에 입대했다. 병사에서 부사관을 거쳐 장교에 올랐고, 1972년에는 우한대학에 들어가 영어를 전공했다.

부인인 리샤오린을 만난 것도 대학에 다닐 때였다. 문혁 시기에 류야저우처럼 대학에 진학한 군 장교는 아주 적었다. 그래서 졸업한 후 한동안 민항관리국에서 일하다가 공군 장교로 재입대했다. 1978년에는 군 인사로는 드물게 작가로 데뷔했다. 또한 1986년에는 방문학자로 미국에 건너가 스탠퍼드대학에서 체류했다. 적지 않은 작품을 발표해 중국작가협회 이사로 활동했고, 수많은 군사 논문을 집필해 군사 이론가로 명성을 떨쳤다. 그런 와중에 서구의 민주·자유·인권 등의 가치관을 높이 평가했고, 중국 정치의 권위주의화를 우려했다.

2016년에는 ‘인민은 위대한 수령을 다시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글을 써 1인 지배체제를 비판했다. 당시 중국에서는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 움직임이 있었다. VOA는 류야저우가 이 일로 시 주석의 눈 밖에 나서 이듬해 조기 퇴역했다고 전했다. 또한 미국으로 망명한 권력층 출신 인사의 발언을 빌려 “시 주석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는 태자당도 용서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실 태자당은 시 주석의 집권 초기에는 최고권력의 한 축이었다. 이는 시 주석이 장쩌민 전 국가주석과 쩡칭훙 전 국가부주석의 후원으로 집권했기 때문이다.

제4세대 최고지도자인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는 모두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이었다. 공청단파는 1980년대 중국 개혁파의 상징인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이 키운 세력이다. 그러나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집권한 제3세대 최고지도자 장쩌민은 상하이방을 앞세워 10년 넘게 통치했다. 상하이방에서 장쩌민의 오른팔로 활약했던 이가 쩡칭훙이다. 쩡칭훙은 당 원로를 견제하고 정적을 숙청하는 등 장쩌민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 앞장섰다. 이는 부모가 공산당 고위 간부를 역임한 태자당이기에 가능했다.

2003년 장쩌민은 국가주석직을 후진타오에게 물려주지만, 쩡칭훙을 국가부주석에 앉혔다. 쩡칭훙을 앞세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후진타오가 총리인 원자바오와 함께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쩡칭훙과 상하이방은 퇴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2008년 쩡칭훙은 물러났고 시진핑이 국가부주석이 됐다. 본래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는 공청단파 인물을 밀었지만, 퇴임하는 조건으로 시진핑을 민 쩡칭훙의 계략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렇기에 2012년 공산당 총서기가 된 시진핑은 리커창을 제외하고 최고지도부를 상하이방과 태자당으로 채웠다.

그리고 시 주석의 오른팔로 왕치산이 떠올랐다. 왕치산은 부인이 부총리를 역임했던 야오이린의 딸이다. 따라서 태자당의 일원이었고 시 주석과는 사석에서 호형호제할 정도로 가까웠다. 시 주석의 집권 1기에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된 왕치산은 시 주석의 정적들을 줄줄이 처벌하는 반부패 드라이브를 주도했다. 특히 전직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상하이방이었던 저우융캉을 단죄해 경쟁 파벌을 일소하는 신호탄을 쐈다. 결국 2017년에 출범한 시 주석의 집권 2기에는 상하이방이 최고지도부에 단 한 명도 진입하지 못했다.

주목할 점은 2018년부터 반부패 사정의 칼날이 태자당에게도 향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중국의 대형 금융업체인 안방보험, 중국 4위의 석유기업인 화신에너지 등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했다. 안방보험은 인민해방군의 10대 원수 중 한 명인 천이의 아들이 경영진이었고, 화신에너지는 쩡칭훙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따라서 중앙기율위가 민간기업을 상대로 사정에 나선 데는 정치적인 목적이 다분했다. 결국 중국 당국은 안방보험·화신에너지 등의 경영진의 경영권을 박탈했다. 시 주석 초기 권력의 또 다른 한 축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른팔이었던 태자당 왕치산도 토사구팽

2020년에는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2018년 국가부주석으로 갈아탄 왕치산의 친구인 런즈창 화위안그룹 회장이 18년형을 선고받았다. 죄목은 횡령·뇌물·공금유용·직권남용 등이었다. 비록 왕치산이 2017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서 물러났으나 ‘실세’ 국가부주석으로 영향력이 막강했던 시기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런즈창을 시작으로 왕치산과 친분이 깊은 천펑 하이난항공그룹 회장을 조사했고, 중앙기율위 내 왕치산 최측근을 숙청했다. 그 후 왕치산은 퇴임할 때까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빈도가 확연히 낮아졌다.

이처럼 시진핑 주석은 태자당 출신으로 같은 태자당 권력자들의 후원과 엄호 아래 권력을 공고히 해왔으나, 종국에는 가신그룹인 ‘시자쥔(習家軍)’만 남겨두었다. 2022년에 출범한 집권 3기에는 태자당마저 일소해 버렸던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시자쥔은 자신에게만 절대적으로 충성하지만, 태자당은 잠재적 경쟁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 류야저우를 무기징역형으로 징벌한 것과 같은 일은 앞으로 계속 벌어질 수 있다. 이미 문혁 시기 마오쩌둥과 같은 절대권력을 구축한 시 주석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는 좌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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