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누리꾼들의 악플 세례…아이브 《해야》가 ‘문화 도둑’이라고?

최근 걸그룹 아이브가 두 번째 EP 앨범을 발표하며 타이틀곡 《해야(HEYA)》의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다. 특히 뮤직비디오가 우리 전통문화를 담아 눈길을 끌었다. 멤버 안유진은 “《해야》에 한국풍으로 뮤비를 찍고 의상을 준비한 게 매우 의미 있었고 준비하면서 재밌었다”고 말했다. 뮤직비디오의 한국화 그림 작화 총괄 및 콘셉트 아트를 담당한 박지은 작가는 “《해야》의 공식 콘셉트는 한국의 아름다움과 해를 사랑한 호랑이”라며 “한지 위에 전통 재료로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IVE 뮤직비디오 《해야》의 장면들 ⓒ뮤직비디오 캡쳐

동양적인 것이 모두 중국 전통?

그런데 갑자기 중국의 일부 누리꾼이 등장했다. 문화를 도둑질했다며 공격하고 나섰다. 그들은 아이브의 SNS를 찾아 “뮤직비디오 전체가 중국 문화로 가득 차 있다” “동양화가 아니라 중국화다” “문화를 도둑질했다”는 등 비난을 퍼부었다. 심지어 작화를 총괄한 박지은 작가 SNS에 몰려가 “부끄러운 줄 알아라” “문화적 열등감 때문에 중국 문화를 훔치지 말라” 등의 악성 댓글을 달았고 박 작가는 댓글창을 닫기까지 했다. 

《해야》 뮤직비디오엔 곰방대, 저고리, 부채, 노리개 매듭, 동양화 이미지, 족자(두루마리) 등이 등장하는데, 그것들이 중국에서 기원했으니 중국의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아이브 뮤직비디오가 ‘문화 도둑질’이라는 것이다. “두루마리는 중국 전통문화의 일부이며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책 형태 중 하나”라든가 “머리 꾸미기에 중국 매듭을 썼고, 무대에서 표현한 산 그림 역시 한국에는 없는 풍경으로 중국 남부에만 존재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중국 내부에선 일부 누리꾼 사이에서 아이브의 문화 도둑질이 기정사실로 통용되고 있기도 하다. 

많은 이가 인터넷에서 단정적으로 이런 말들을 하면 또 다른 사람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번만이 아니라 이런 주장이 반복적으로 나온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2022년에 아이브의 장원영이 파리 패션위크에 참석했을 때 봉황 비녀를 꽂았는데 그때도 중국의 일부 누리꾼이 봉황 비녀가 중국 양식이라며 문화 도둑질을 비난했다. 아이브만 비난 대상이 되는 게 아니라 한국 자체를 문화 도둑으로 규정한다. 한국이 중국 문화를 상습적으로 훔친다는 것이다. 워낙 인구가 많은 나라이니 일부 누리꾼이라 해도 그 숫자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들이 온갖 인터넷 공론장에서 이런 주장을 집요하게 반복하면 한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커질 수 있다. 

IVE 뮤직비디오 《해야》의 장면들 ⓒ뮤직비디오 캡쳐
IVE 뮤직비디오 《해야》의 장면들 ⓒ뮤직비디오 캡쳐

동아시아는 같은 문화권이다. 동양의 문화 사이엔 유사성이 클 수밖에 없다. 비슷하다고 다 문화 도둑이라고 몰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동양적인 문화 중엔 중국에서 기원하지 않은 것도 많지만 중국 일부 누리꾼은 마치 ‘만물 중국 기원설’을 주장하기라도 하듯 동양적인 게 모두 중국 전통이라는 식이다. 

박지은 작가는 아이브의 소속사가 “전통적이지만 낯선 한국성” 이미지를 요청해 거기에 맞춰 작화했다고 했다. 홍익대 동양화과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박 작가는 “내 그림이 한국적이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면서 “민화의 호랑이 모티브와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등을 적극적으로 참고했다. 중국 누리꾼들이 지엽적으로 트집만 잡는 것”이라고 했다. 

설사 아이브 뮤직비디오 속 요소들이 정말 중국에서 기원했어도 그렇다. 중국에서 시작됐으면 그게 중국만의 전통문화일까? 그리스·로마 문명에서 비롯된 건 모두 그리스, 이탈리아만의 전통인가? 그러면 서구 대다수 나라에서 많은 전통문화가 사라질 것이다. 중요한 건 그 나라의 역사 속에 실제로 그러한 문화가 있었는가 여부이지, 그 문화가 어디서 비롯되었느냐가 아니다.  

곰방대, 저고리, 부채, 노리개 매듭, 동양화 이미지, 족자(두루마리) 등은 실제 우리 역사 속에 존재한, 우리 선조들이 향유한 우리 문화였다. 만약 이 중에 중국에서 비롯된 게 있다면 그건 중국의 영향을 받은 한국 문화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에서 전래한 유교도 한국의 전통문화일 수 있다. 중국의 산 모양 같은 산수풍경도 동양화의 일반적 표현양식이다. 

진짜 문화 도둑질은 자국의 역사 속에 없는 걸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태도다. 바로 중국의 일부 누리꾼이 그렇게 하고 있다. 김치나 조선식 한복을 중국 문화라고 우기는 것 말이다. 그들이 문화 도둑질이라며 열거한 것들은 많은 한국인이 손쉽게 우리 역사와 전통을 담은 책, 영상물 등을 통해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조금 연배가 있는 한국인은 실생활 속에서 접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한국인이 그런 것들을 전통이라고 인식하는 건 매우 자연스럽다. 반면 김치나 조선식 한복은 한류를 접하기 전까진 중국 누리꾼들이 보지도 못했을 텐데 그걸 자기들 전통이라고 우긴다. 

IVE 뮤직비디오 《해야》의 장면들 ⓒ뮤직비디오 캡쳐

‘중국夢’ 염원하지만 반발심만 확산

중국에 조선족이 살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전통문화가 중국 소수민족의 문화로서 중국 문화의 일부라는 논리도 제기된다. 그렇게 따지면 중국 문화는 차이나타운이 있는 미국 문화의 일부인가. 

중국은 대국이고 제국이었다. 동아시아 문화의 근간이 중국이었다. 한국은 특히 중국과의 관계가 밀접했다. 소중화를 자처했을 정도로 중국 문화를 많이 받아들였다. 그러니 한국 전통에 중국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그걸 하나하나 문화 도둑질이라고 하는 건 정말 치졸하고 편협한 태도다. 이탈리아인들이 로마의 영향을 받은 서구 국가들에 문화 도둑이라고 하지 않는다. 한국 가수가 록, 힙합, 알앤비, 포크송을 부르며 K팝이라고 한다고 미국인들이 한국을 문화 도둑이라고 하지 않는다. 문화는 원래 영향을 주고받으며 흐르는 것이다. 

중국은 지금 제국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중국몽(中國夢)을 염원한다. 제국은 물리적 힘도 중요하지만 소프트파워도 중요하다. 소프트파워의 핵심 중에 문화적 매력, 개방성, 관용성 등이 있다. 중국 일부 누리꾼은 이와 정반대의 편협하고 우악스러운 자국 중심주의로 중국의 매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중국에 대한 경계심과 반발심만 키운다. 

중국은 국가가 여론을 통제한다. 그러니 정부에서 잘못된 인터넷 주장을 시정하려는 노력이라도 보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방치하는 느낌이다. 그 속에서 극히 편협한 애국주의 누리꾼들이 목소리를 높여간다. 이런 식이라면 중국이 문화적으로 존중받기는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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