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라는 비상사태를 맞닥뜨린 감정의 모험 《인사이드 아웃 2》

어떤 위로는 삶에서 조금 뜻밖의 형태로 도착한다.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혼란으로 가득 찼던 사춘기에 이 영화가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내 마음을 내가 설명할 수 없던 많은 순간, 이 영화 속 캐릭터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2015년 개봉해 국내 497만 관객을 동원한 《인사이드 아웃》의 흥행은 아이들뿐 아니라 마음을 속속들이 챙기지 못한 채 훌쩍 자라버린 ‘어른아이들’의 열광적인 지지 역시 뒷받침된 결과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 감정을 캐릭터로 만들어, 그들이 주인공 라일리의 마음속에서 겪는 모험을 곧 라일리의 감정 변화로 묘사한 수작이었다. 9년 만에 돌아온 속편은 전편에 버금가는 재미와 울림을 선사한다. 여전히 사랑스럽고 명랑한 소녀 라일리의 마음속에 새로이 추가된 감정들의 활약이 엄청나다. 그도 그럴 것이, 라일리의 사춘기가 시작됐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자아가 생긴다는 천지개벽 

기쁨과 슬픔, 버럭과 까칠, 소심까지 다섯 감정은 여전히 라일리의 감정 본부에서 일한다. 이들은 감정 계기판을 움직여 라일리의 일상이 원활히 흘러가도록 조율하는 임무로 분주하다. 자기 자신에게 점점 엄격해지는 라일리가 좋은 기억만을 간직하게 하고 싶은 기쁨은, 나쁜 기억들을 골라 멀리 날려버리는 일을 자처한다. 

변화는 불시에 일어난다. 라일리의 감정 계기판에 낯선 경고등이 튀어나온 것이다. 정체는 ‘PUBERTY’(사춘기). 요란하게 울리는 경고등 앞에서 감정들이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본부에는 확장 공사라는 일대 격변이 일어난다. 불안, 당황, 따분, 부럽까지 새로운 감정들이 본부 요원으로 추가된 사이에 기존 감정들은 어쩐지 서서히 밀려나는 듯하다. 그리고 결국, 새로운 감정의 리더 격인 불안이 ‘새로운 라일리’를 위해 기존 감정들을 쫓아내는 사태가 벌어진다. 

《인사이드 아웃》 1편은 애니메이션으로 인생을 말하는 픽사의 새로운 경지였다. 삶의 모든 순간에 느낀 감정과 그렇게 흐른 시간이 개인의 역사를 지탱하고, 나아가 다른 존재와 연결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그린 작품이었다. 삶의 모든 순간을 긍정할 수는 없지만, 슬픔까지 소중히 품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너른 시선이 존재했다. 

성장하는 모든 존재의 감정을 뒤집어 꺼내본 듯한 상상력은 2편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더 철저해진 듯한 묘사의 배경엔 프로덕션 과정의 각고한 노력이 있었다. 제작진은 10대 소녀 아홉 명으로 꾸려진 일명 ‘라일리 크루’를 꾸렸다. 대상은 《인사이드 아웃 2》 프로젝트가 시작된 2021년에 13~16세였던 소녀들이다. 다양한 지역 출신으로 여러 관심사를 가진 이들은 제작진과 주기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라일리의 감정을 묘사하는 과정에 관여했다. 사춘기의 감성에 좀 더 가깝게 접근하려는 제작진의 방편이었다. 

영화는 전편에서 초등학생이었던 라일리가 중학생이 되면서 벌어지는 생생한 일상들로 가득하다. 아이스하키팀 ‘포그혼’의 여전히 유능한 선수이자 사랑스러운 딸이지만, 모든 일에 민감하고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호르몬 변화는 도저히 통제가 불가능한 영역이다. “나를 좀 내버려 두라”고 소리를 지르는 딸을 바라보는 라일리 엄마의 머릿속의 감정들은 이렇게 말한다. “다가올 10년의 예고편이네!” 

가장 큰 변화는 ‘자아’의 생성이다. 라일리의 다양한 생각과 경험들은 빛을 반짝이는 긴 선으로 표현되는 신념이 되고, 이 줄기가 모인 신념의 나무는 다시 쑥쑥 자라 열매인 자아를 만든다. 기쁨의 활약으로 ‘난 좋은 사람이야’ ‘이길 수 있어’ 같은 긍정적인 신념이 라일리의 자아를 단단하게 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라일리와 친구들이 아이스하키팀 여름 캠프에 참여하면서 벌어진다. 동경하는 선배의 눈에 잘 보이고 싶고, 멋진 아이스하키팀 ‘파이어 호크’에 소속되고 싶은 바람은 자꾸만 라일리를 궁지로 내몬다. 

《인사이드 아웃 2》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더 크고 강력한 모험 

새로운 감정의 리더 격인 불안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예측해 미리 대처하는 것으로 라일리를 보호하려 한다. 문제는 최악의 시나리오 역시 수십, 수백 가지를 만들어 전송하는 탓에 라일리를 더 불안에 떨게 한다는 점이다. 라일리의 삶이 이전보다 복잡해졌기에, 더 섬세한 감정들의 컨트롤이 필요하다는 것이 불안의 주장이다. “저건 라일리가 아니”라는 기쁨의 지적을 불안은 간단히 갈음해 버린다. “알아, 새로운 라일리지.” 

불안에 삶이 통째로 잠식당하는 듯한 기분. 사춘기를 겪은 이라면 누구나 아는 감정이다. 성장하면서 기쁨은 어느 순간 점점 자취를 감춘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자기혐오와 끝없는 최악의 상상이다. ‘난 부족해’ ‘사람들을 실망시킬 거야’ ‘이걸 해내지 못하면 외톨이가 될 거야’ 같은 부정적 신념은 비단 라일리의 것만은 아니다. 이 애니메이션이 여전히 놀라운 것은, 특정 시기와 상황과 행동에서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캐릭터 플레이를 통해 설득력 있게 담아낸다는 점이다. 감정적이고 형이상학적 세계를 시각화한 독창성에서 느껴지는 신선함은 이미 한 번 경험한 것이라 덜할지 몰라도, 여전히 놀라운 세계인 것은 분명하다. 

라일리의 마음속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을 목격하는 것은 2편만의 재미다. 우선 1편에도 등장한 성격섬이 확연히 달라졌다. 가족섬은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크기가 된 반면, 우정섬은 크고 화려해졌다. 의식의 흐름 강을 따라가다 만날 수 있는 ‘비아냥 대협곡’, 라일리의 이상형을 모아둔 ‘최애 얼굴 모아 산’, 미래의 소망을 담은 ‘장래희망 퍼레이드’ 등 놀라운 상상력으로 빚어낸 장면들이 다섯 감정의 흥미진진한 모험을 따라 영화 곳곳을 수놓는다. 1편에서 기억 저편의 잊힌 존재로 등장해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빙봉’의 자리는 새로운 캐릭터들이 차지한다. 어린 시절 라일리가 좋아했던 프로그램의 2D 캐릭터 블루피와 파우치, 구르는 재주가 필살기인 게임 캐릭터 랜스가 확실한 웃음을 책임진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건가 봐. 기쁨이 줄어드는.” 감정 본부로 돌아가기 위한 모험의 와중에 기쁨은 처음으로 상실감을 얻는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건, 라일리가 어떤 사람인지는 감정들이 컨트롤해서 만들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 1편에서 아이들에게 ‘영원히 철들지 말아 달라’는 엔드 크레딧 자막을 추가했던 제작진은 2편에 이르러 ‘너희가 어떤 모습이든 사랑한다’는 뭉클한 문구를 전달한다. 이 모든 혼돈을 거쳐 어른으로 성장한 우리는, 또한 어른으로 자라날 존재들은 모두 각자인 이유만으로 소중하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엘리멘탈》 정도를 제외하고는 《소울》 《루카》 《메이의 새빨간 비밀》 등에서 만족스럽지 않은 성적을 거뒀던 디즈니·픽사로서는 건재함을 증명해야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우선 시작이 나쁘지 않다. 북미에서는 10억 달러의 수입을 올린 전설적 속편 《토이 스토리 4》(2019) 이후 가장 많은 사전 예매량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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