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지각변동 속 극적으로 부활한 《개그콘서트》 촬영 현장을 가다

  10 11월 2023

“개콘을 다시 한다고?” 

최근 대한민국 곳곳에서 들리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는 수많은 감정이 녹아있다. 우선 잊고 지낸 친구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걸려온 것처럼 놀라움과 반가움이 교차한다. 1999년 9월부터 20년 넘게 국민을 웃기다가 2020년 6월 홀연히 사라진 KBS 《개그콘서트》다. 끝은 썩 좋지 않았다. 공영방송 코미디 프로그램의 틀 속에서 ‘독한 것만 살아남는’ 트렌드 변화에 떠밀려 내리막길을 걷다가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멈춰 섰다. 마지막 회 시청률은 3%였다. 최고 시청률이 30%에 근접하고 숱한 유행어와 스타를 만들어낸 옛 영광은 온데간데없었다. 3년 반 만에 여전한 공개 코미디 형식으로 부활한 《개그콘서트》를 마주하면서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는 이유다. 

KBS 《개그콘서트》 측이 11월1일 새로운 버전 《개그콘서트》의 첫 녹화에 앞서 제작 발표회를 열었다. 제작진과 출연자들이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KBS 제공

검증된 스타와 신인 유망주로 우려 돌파 

하지만 놀라움과 반가움, 기대와 우려 모두 근간에 애정이 있기에 나오는 감정임은 분명하다. 11월1일 오후 《개그콘서트》 부활 후 첫 녹화가 진행된 서울 여의도 KBS 별관을 직접 찾았다. 만감이 서린 녹화 현장에선 여느 방송 프로그램과 확연히 다른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출연자들과 제작진은 물론 방청객들도 잃어버린 뭔가를 찾으러 온 듯한 결연함을 뿜어냈다. 단순히 웃기려, 웃으러 모인 사람들 같지 않았다. 

새로운 버전의 《개그콘서트》를 건물로 치면 전성기를 이끈 코미디언 김원효·박성호·정태호·김영희·김혜선·정범균·송준근·송영길·이광섭 등이 기초를, 홍현호·조수연·김지영·박형민 등 ‘중고 신인’들이 뼈대를 맡는 구조다. 신인 크루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신인 13명과 ‘레이디액션’(임선양·김슬기), ‘하이픽션’(방주호) 등 수십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은 건물 외관을 새로운 스타일로 바꿔놨다. 

KBS 별관은 이날 아침 일찍부터 분주했다. 예전 《개그콘서트》 녹화 장소였던 신관에 익숙한 베테랑 코미디언들이 출연자 대기실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출연자들은 대기실이든 분장실이든 의상실이든 가리지 않고 몇 번이나 연기 합을 맞추고 의견을 교환했다. 신인과 베테랑을 막론하고 얼굴에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제작진도 종종걸음으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를 반복했다. 

후배들과의 연습을 마친 김원효가 늦은 점심을 먹으러 로비로 나왔다. 김원효는 ‘봉숭아학당’ 코너에서 선생님을 맡았다. 김미화, 박미선, 박준형, 김대희 등 국내 코미디계에 한 획을 그은 선배들이 거쳐간 자리다. 그의 아내이자 동료 코미디언인 심진화가 옆에서 “파이팅” 하며 용기를 북돋는다. 무료 커피차를 보낸 박나래, 도시락을 돌린 권재관, 막간 바람잡이 역할을 자처한 변기수 등 다른 유명 코미디언들의 ‘친정’ 지원도 이어졌다. 역시 《개그콘서트》 출신으로 구독자 274만 명의 유튜브 채널 ‘숏박스’를 운영하는 김원훈과 조진세는 방송 예고 영상에 무료로 출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튜브 구독자 수가 각각 180만 명, 63만 명인 ‘낄낄상회’(장윤석·임종혁), ‘킥서비스’(박진호·정진하) 멤버들도 예고 영상 무료 출연에 기꺼이 동참했다. 이재현 《개그콘서트》 PD는 “《개그콘서트》 출신 스타 상당수가 외부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성심성의껏 도움을 주고 있다”며 “이처럼 현재 소속과 이해관계를 떠나 코미디언들을 ‘가족’ ‘고향’이란 이름으로 한데 뭉칠 수 있는 프로그램은 《개그콘서트》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추억 안고 ‘5대1 경쟁률’ 뚫은 방청객들

《개그콘서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방청객들에게서도 느껴졌다. 녹화 1시간 전인 5시30분 방청객들이 출입문 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앞서 정원이 500명인 방청객 모집에 2614명이 신청했다. 경쟁률이 5대1을 넘은 것이다. 중·고등학생부터 20대, 3040 직장인, 중·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양한 모습의 방청객들이 방청을 기다렸다. 황진택씨(57)는 《개그콘서트》를 두고 “30대 때부터 정말 재미있게 본 프로그램”이라며 “종영 직전 같은 지루함과 식상함이 반복되지 않고 잘됐으면 좋겠다. 특히 나처럼 나이가 있는 사람과 젊은 사람이 동시에 깔깔 웃으며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길 바란다”고 전했다. 《개그콘서트》 방영 초기에 태어난 황씨의 딸 황은비는 코미디언이 되어 이날 신인 크루 일원으로 무대에 섰다. 

윤해빈씨(24)는 “3년 반 전 군 복무 중에 《개그콘서트》가 종영돼 많이 아쉬워한 기억이 있는데, 부활한다는 소식에 반가워 곧바로 방청 신청을 했다”면서 “방청권에 당첨된 후 주변에 자랑했더니 사람들이 ‘개콘이 부활하느냐’고 관심을 보이며 물어왔다. 졸지에 여기저기에 프로그램 홍보를 하게 됐다”며 웃었다. 옆에 있던 여자친구 백진주씨(21)도 “어릴 적 부모님과 재밌게 본 추억을 떠올리면서 방청하러 왔다”고 했다. 두 사람은 출연진 중에 인기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있는 걸 확인하고 기대감이 더 커졌다고 덧붙였다. 

각양각색의 추억을 품은 방청객들이 스튜디오로 모두 들어갔다. “즐길 준비 되셨나요?” 정범균의 목소리와 함께 드디어 녹화가 시작됐다. 무대가 떠나갈 듯한 함성과 박수 소리를 온몸으로 맞으며 ‘봉숭아학당’ 선생님 김원효가 등장했다. 과거 《개그콘서트》에서 준교수와 곤잘레스 캐릭터로 사랑받은 송준근이 이번에는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는 노인 김덕배로 분했다. 자신의 방송을 시청하는 이들을 향해 “행님들!”이라고 외치는 김덕배는 맹구(심현섭), 복학생(유세윤) 옥동자(정종철) 등 ‘봉숭아학당’ 레전드 캐릭터를 연상케 한다. 

KBS 《개그콘서트》 측이 11월1일 새로운 버전 《개그콘서트》의 첫 녹화에 앞서 제작 발표회를 열어 시연한 ‘금쪽 유치원’ 코너 ⓒ시사저널 오종탁
KBS 《개그콘서트》 측이 11월1일 새로운 버전 《개그콘서트》의 첫 녹화에 앞서 제작 발표회를 열어 시연한 ‘니퉁의 인간극장’ 코너 ⓒKBS 제공
KBS 《개그콘서트》 측이 11월1일 새로운 버전 《개그콘서트》의 첫 녹화에 앞서 제작 발표회를 열었다. 코미디언 동료들이 코너 시연에 나선 신인들을 응원하고 있다. ⓒ시사저널 오종탁
11월1일 새로운 버전 《개그콘서트》의 첫 녹화 직전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 방청객들 ⓒ시사저널 오종탁

뚜껑 열어보니 녹화 현장은 ‘합격점’ 

유튜브에서 신동엽을 모사하는 남동엽으로 널리 얼굴을 알린 신인 코미디언 남현승은, 그 캐릭터를 《개그콘서트》 무대에 그대로 가져왔다. 방청객들은 “정~말” “이 녀석들아”같이 ‘대놓고 미는’ 유행어를 즐겁게 따라 하며 한바탕 크게 웃었다. 휴대전화로 유튜브에 접속해 혼자 낄낄거리던 사람들이 이제 500석 규모 공연장에서, 또 집에서 TV를 보며 함께 웃게 됐다. 완벽한 신구의 조화를 과시하는 ‘봉숭아학당’ 무대였다. 

유튜브 채널 ‘폭씨네’의 콘텐츠 ‘니퉁의 인간극장’도 무대 버전으로 바뀌었다. 니퉁 역할의 김지영은 능청스러운 필리핀 출신 며느리 연기로 방청객들을 사로잡으며 《개그콘서트》의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개그콘서트》 제작진은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무대에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스케치 코미디(짧은 영상 형태의 코미디) 두 편을 사전 제작해 방청객들에게 시연했다. 본방송에서는 한 편이 송출될 예정이다. 

11월1일 새로운 버전 《개그콘서트》의 첫 녹화가 시작됐다. 코미디언 정범균이 본격적인 코너 진행에 앞서 방청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시사저널 오종탁

이 밖에 ‘금쪽 유치원’의 홍현호와 이수경, ‘데프콘 닮은 여자 어때요’의 조수연, ‘진상 조련사’의 김시우, 전재민·강주원·윤원기·새암·슈야로 구성된 5인조 개그 아이돌 그룹 ‘코쿤’ 등도 《개그콘서트》의 새로운 얼굴이 되기 위한 출정식을 가졌다. 김영희, 김혜선, 정범균, 송준근, 송영길, 이광섭 등 베테랑 코미디언들은 신인들을 ‘받치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드러냈다. 박성호와 정태호 등 스트라이커형 코미디언들은 녹슬지 않은 공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개그콘서트》 제작진과 출연자들은 공백 기간에 크게 성장한 유튜브나 OTT의 코미디 콘텐츠를 의식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정면으로 대결을 신청할 마음은 없다. 김상미 《개그콘서트》 CP는 “식상한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는 주말 밤 온 가족이 편안하게 보고 같이 웃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목표로 한다”며 “유튜브와 OTT의 ‘쎈’ 코미디와 달리 부모와 자녀가 동시에 시청해도 어색해지는 순간 없이 볼 만한 코미디가 있다면,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는 계기를 만들어 세대 갈등을 줄이는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재현 PD는 “달라진 콘텐츠 환경 속에서 TV뿐 아니라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개그콘서트》 콘텐츠가 원활히, 그리고 널리 소비될 수 있도록 관련 전문가들과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백기를 끝내고 기지개를 켠 《개그콘서트》는 11월12일 첫방을 시작으로 매주 일요일 오후 10시25분 방송된다.

이재현 《개그콘서트》 PD가 11월1일 새로운 버전 《개그콘서트》의 첫 녹화에 앞서 열린 제작 발표회에 참석했다. ⓒKBS 제공

■ “멈춤 있었기에 과감히 ‘리셋’ 버튼도 누를 수 있었다” 

이재현 《개그콘서트》 PD 미니 인터뷰 

이재현 PD는 11월1일 《개그콘서트》 첫 녹화가 끝난 후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리셋(reset·재설정)’이란 표현을 가장 많이 썼다. 이 PD는 선배 김상미 CP와 올 상반기부터 휴일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개그콘서트》 부활을 준비해 왔다. 기존 《개그콘서트》와 후속 개그 프로그램인 《개승자》 모두에 연출로 참여했던 이 PD는 누구보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에 진심이다. 

이 PD는 새로운 버전의 《개그콘서트》에 대해 “출연자들과 제작진이 ‘재미’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끈끈한 팀워크로 만들어가는 대한민국 최고의 개그 프로그램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과거 《개그콘서트》를 지탱하는 힘인 동시에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여겨진 배타적인 공채 문화, 엄격한 내부 권력 구조 등은 사라졌다고 이 PD는 자신했다. 그는 “‘악습’을 끊어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롱런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 모든 걸 리셋해 새로운 룰을 정립한 셈”이라면서 “3년 반의 공백이 있었기에 과감히 리셋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 PD와의 일문일답이다. 

부활 후 첫 녹화를 자평한다면. 

“방청객들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다고 본다. 모든 코너가 끝나고 출연진이 무대에서 뛰어내려가 방청객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방청객들로부터 정말 재미있었다는 피드백이 쏟아졌다. 일부는 눈물까지 흘렸다고 들었다. 감사하고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출연자들의 연기는 어땠나. 

“땀 때문에 마이크가 흘러내려 녹화를 잠시 중단한 걸 제외하고 NG가 한 번도 나지 않았다. 출연자들이 얼마나 많은 담금질을 해왔고, 어떤 마음으로 무대에 섰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신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예전에는 베테랑 코미디언의 전유물이었던 비중 있는 역할을 대거 신인들에게 맡겼다. 베테랑들과 제작진이 ‘신인을 키우자’고 의기투합한 결과다. 놀랍게도 신인 중 누구 하나 당황하지 않고 역할을 120% 수행해 냈다.” 

신인들이 당당하고 자신 있게 연기할 수 있도록 해준 원동력은 뭔가. 

“우선 고참이든 신인이든 출연자들이 스스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최대한 살려주자는 게 제작진의 방침이다. PD가 ‘답’을 제시하면 출연자는 찍소리 못 했던 과거 분위기와 확연히 달라졌다.” 

그 밖에 기존 《개그콘서트》 시절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많이 알려졌다시피 KBS 희극인실은 공채 문화가 강해 외부 출신의 진입이 굉장히 어려웠다. 그러던 게 3년 반을 쉬면서 달라졌다. 지금은 열린 마음으로 타 방송사 공채 출신 코미디언은 물론 연기자 출신, 유튜브 크리에이터 등도 다 받아들이고 있다. 흔들리지 않을 튼튼한 판이 짜였다. 대한민국 코미디를 발전시킬 역량이 있다면 누구든 와 달라.” 

《개그콘서트》가 배출한 스타들의 추가 합류 가능성도 있을까. 

“이미 몇 명이 합류해 물밑에서 코너를 짜왔다. 다른 이들의 문의도 속속 들어오고 있다.” 

흔희 말하는 코미디언 선후배 사이 ‘똥군기’(과도하고 부당한 법도)도 사라졌나. 

“사전에 제작진과 희극인실 모두가 똥군기 폐지에 합의하고 《개그콘서트》를 부활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악습을 끊어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신인에게 코너의 주요 역할을 부여하지 않고 무대 준비를 시키는 것이나 배타적인 공채 문화, 위압적인 제작진-출연자, 선배-후배 관계 등 악습을 과감히 끊어내는 데 3년의 공백기가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종영을 겪지 않고 그대로 흘러왔다면 관성 때문에 리셋 버튼을 누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모든 게 리셋된 덕분에 우리가 새로운 룰을 정립할 기회를 얻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롱런할 수 있는 토대가 구축됐다.” 

뜨거운 녹화 현장과 달리 TV 시청자들의 반응이 차갑고 시청률도 잘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건가. 

“기본적으로 공연에 특화된 코너와, 반대로 방송에 특화된 코너가 있는 게 사실이다. 시청률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앞으로 ‘공연용’과 ‘방송용’의 요소를 적절히 배합해 방청의 재미와 시청률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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