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몸병 주범 ‘치태’ 방조범은 ‘구강 노쇠’

  17 06월 2024

잇몸에서 피가 나면 십중팔구 치주질환(잇몸병)이다. 즉시 치과를 찾아 치료하라는 신호로 여길 필요가 있다. 생활하는 데 불편하지 않다고 방치하면 치아가 흔들리거나 빠질 정도로 악화할 수 있으며, 심하면 전신 건강까지 위협받게 된다. 잇몸 출혈 외에도 잇몸 통증, 고름, 치아 사이 벌어짐으로 인한 음식물 끼임, 잇몸이 내려앉아 치아가 길어 보이는 증상, 심한 입냄새, 치아 흔들림 등이 치주질환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바람에도 치아가 흔들린다며 풍치라고도 했던 치주질환은 치아를 지탱하는 조직(잇몸·인대·뼈)에 염증이 생기는 병이다. 이 치주조직은 한 번 손상되면 건강한 상태로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김윤정 관악서울대치과병원 치주과 교수는 “치주질환은 초기에는 자각증상이 미미하고 잇몸이 붓고 피가 나는 증상이 나타났다가도 전신 건강 상태에 따라 다시 증상이 완화되므로 방치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잇몸병이 심하게 진행돼 잇몸뼈가 상당히 파괴되고 치아가 흔들릴 때 비로소 병원을 찾는다. 이때는 이미 잇몸 상태를 회복시키기 어려워 치아를 빼내고 임플란트나 브리지 등 고가의 보철치료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며 적기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치태 오래 방치하면 딱딱한 치석 형성

치주질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염증이 잇몸에만 있는 치은염과 인대·뼈까지 파고든 치주염이다. 치은염은 치과에서 스케일링 등 관련 치료를 받으면 건강한 잇몸으로 되돌릴 수 있지만, 치주염은 그렇지 않다. 치은염이든 치주염이든 치태(플라크)와 치석이 주범이다. 치아와 잇몸 사이에는 V자 모양의 좁은 틈(치은열구)이 있다. 여기에 염증 세균이 자리하고 막을 치는데, 이것이 치태다. 끈적이며 무색인 치태에서 병원균이 독소를 분비해 염증이 발생한다. 이러한 치은염 상태에서 잇몸이 붓거나 피가 나는 등의 증상이 생긴다.

치태를 제거하지 않고 오래 방치하면 칼슘 등과 섞여 딱딱해지는 치석이 형성된다. 치은열구에 더 많은 치태와 치석이 쌓이면서 아예 큰 주머니(치주낭)가 형성된다. 이 정도로 진행되면 염증이 잇몸을 파고들어 인대와 뼈까지 침범할 수 있다. 고름이 나오고 입냄새가 독해진다. 처음에는 음식을 씹을 때 아프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음식을 먹지 않을 때도 통증이 발생할 수 있다. 뼈가 녹아서 잇몸까지 내려앉으면 치아가 길게 드러나고, 심하면 치아가 흔들리고 빠진다.

구강 노쇠는 전신 건강까지 위협

치주질환은 나이가 들수록 더 자주 발생한다. 20세 이상에서는 2명 중 1명이던 치주질환 환자가 40세 이상에서는 5명 중 4명 이상으로 많아진다. 이는 면역이 약해져 세균 저항력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구강 내 세균 증식이 쉽게 일어나는데, 이는 타액 분비량 감소와 구강 내 세균 증식과 관련돼 있다. 나이가 들면서 치주조직이 퇴화하고, 치아와 잇몸 사이의 틈이 커짐으로써 치주질환의 위험이 커진다. 당뇨병이나 심혈관질환 같은 만성 질환도 치주질환 위험을 높인다. 이러한 이유로 구강 위생 관리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중요하다. 이정원 서울대치과병원 원스톱협진센터 교수는 “나이가 많을수록 손의 기민함이 떨어지거나 시력이 약해지면서 구강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는 치주질환의 위험을 높인다. 실제로 치매나 알츠하이머 환자의 치주질환이 급격히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치태와 치석으로 인해 치주질환이 생기고 구강 위생 불량, 면역 저하, 타액 감소, 치주조직 퇴화 등이 겹치면 전반적으로 구강 기능이 떨어진다. 이러한 현상을 ‘구강 노쇠’(Oral Frailty)라고 한다. 이는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기능이 현저히 떨어져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상태를 의미한다. 노화는 나이가 들면서 신체적·인지적 기능이 점차 저하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피부의 탄력이 떨어지고 주름이 생기며 몸의 근육량이 줄어드는 것이다. 노쇠는 노화와는 다른 개념이다. 전신적 기능이 저하되고 생리적 능력이 감소해 낙상, 장애, 질병, 입원, 사망률 등 건강 위험이 증가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노쇠하면 삶의 질이 저하되고 사망할 위험이 커진다는 말이다. 실제로 약 2000명의 65세 이상 노인을 약 4년간 추적 조사한 일본 연구에 따르면, 구강 노쇠로 진단받은 사람은 건강한 사람보다 전신 노쇠 비율이 2.4배, 근 감소 비율이 2.2배, 장애 발생률이 2.3배, 사망률이 2.2배 더 높은 결과를 보였다.

강경리 강동경희대병원 치주과 교수는 “구강 노쇠란 구강악안면 영역의 기능 저하를 말한다. 씹을 수 없는 음식 수가 증가하고, 식사 중 목이 메거나 흘림 또는 어눌한 발음 같은 증상을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구강의 기능이라고 하면 씹는 것(저작)만 떠올린다. 하지만 구강은 음식물을 씹어서 삼키는 영양 공급의 시작점이며, 발음을 통해 의사소통을 담당하고, 얼굴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사회성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공기가 흡입·배출되는 통로의 일부를 차지해 호흡과도 연관돼 있다”고 설명했다. 

치주질환과 구강 노쇠는 전신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구강 내 병원균이 혈류를 통해 이동해 심장병(동맥경화·심내막염·심근경색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치주질환의 심각성에 따라 심혈관질환 발생률이 19~34% 상승한다. 가장 많은 연구가 진행된 분야는 당뇨병이다. 혈당이 높을수록 잇몸 염증 매개 물질이 증가해 치주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구강 병원균이 분비하는 독소가 혈당 조절을 방해해 당뇨병이 악화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치매와 치주질환의 상관관계도 밝혀지고 있다. 치주질환으로 치아 개수가 줄면 씹는 기능이 저하되고 뇌로 향하는 혈류량도 감소한다. 이에 따라 뇌의 대사 활동과 신경 활동이 줄어 인지 기능이 저하될 수 있다. 구기태 서울대치과병원 치주과 교수는 “치주질환으로 인한 염증성 인자들이 혈관질환을 유발하고 심혈관질환까지 이어질 수 있다. 치주질환 치료를 통해 혈관 기능을 개선하거나 심혈관질환 발생률과 중증도를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치주질환 치료는 결국 구강 노쇠를 예방하는 것이다. 치주질환의 주범인 치태와 치석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치주질환의 기본 치료다. 치과에서는 치아 표면뿐만 아니라 잇몸과 치아 사이의 치주낭에 있는 치태와 치석을 제거한다. 만일 이러한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 수술은 잇몸을 절개해 깊숙이 박힌 치석과 염증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또 잇몸과 치아 사이에 특정 약물을 주입하거나 세균 제거를 위해 항생제를 사용한다.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는 먹는 잇몸 치료제는 치료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윤정 교수는 “잇몸 치료를 위해서는 꾸준한 정기 검진이 필요하다. 초기에는 2~4개월 주기로 유지·관리를 시작하고, 치주 상태가 안정화되면 6개월 주기로 변경한다. 정기적인 구강검진을 받으면 심혈관질환 발병률이 10% 낮아지며, 연 1회 이상 스케일링은 14%의 감소세를 보인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치과 의사에게 칫솔질 배워야 

사실 치료보다 예방이 더 중요하다. 치주질환 예방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칫솔질이다. 한 번쯤은 치과 의사에게 칫솔질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칫솔질까지 배울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많은 사람이 칫솔질을 배운 적이 없어 제대로 치태를 제거하지 못한다. 치과 의사들이 공통으로 권하는 칫솔질 방법은 다음과 같다. ‘치아 하나씩 정성껏 닦고, 치아와 잇몸 사이에 칫솔모가 닿도록 45도로 비스듬히 기울여 닦는다. 이때 너무 세게 닦으면 잇몸이 상할 수 있으므로 칫솔은 연필을 잡듯이 가볍게 쥔다.’

또 구석구석 닦아야 하므로 칫솔은 너무 크지 않은 것이 좋다. 치아나 잇몸이 건강하면 칫솔모 강도는 ‘보통’, 잇몸에 통증이 있다면 ‘부드러운’ 강도가 적합하다. 정재은 관악서울대치과병원 치주과 교수는 “치태는 칫솔질로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안 닦이는 곳 없이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치아를 닦는 것이 중요하다. 치아 안쪽에 치태와 치석이 쌓여있거나 착색된 경우가 많은데, 습관적으로 잘 닦이는 바깥쪽만 닦아 발생하는 현상이다. 치아 안쪽을 닦는 데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칫솔질을 꼼꼼히 해도 닦이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다. 예를 들면 잇몸이 내려가서 생긴 치아 사이의 공간이다. 이런 경우 치아 사이 공간을 깨끗하게 닦기 위해 이쑤시개보다는 치간칫솔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이쑤시개를 사용하면 치아가 옆으로 벌어지는 쐐기 효과로 치아 사이가 더 벌어지고 치태 제거 효과는 없다. 치간칫솔이 들어가지 않는 치아 사이는 치실을 사용해 닦아내야 한다. 치간칫솔과 치실 사용법도 치과 의사에게 문의하는 편이 좋다. 조영단 서울대치과병원 치주과 교수는 “일반 칫솔은 치아 사이 그리고 치아와 잇몸 사이처럼 요철이 있는 곳은 닦기 힘들다. 이런 요철 부위를 닦기 위해 고안된 것이 치간칫솔과 치실이다. 치간칫솔은 치아 사이의 치태 제거에 효과적이다. 치실은 실 형태로 치아 사이에 끼어있는 음식물 찌꺼기 제거에 좋다. 많은 사람이 칫솔은 매일 사용하지만 치간칫솔과 치실은 매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치과 의사는 칫솔과 치간칫솔 또는 치실을 한 세트로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칫솔과 치간칫솔을 한 세트로 사용하면 칫솔질에만 10분 이상 소요된다. 사실 이렇게 철저하게 관리해도 치석은 생긴다. 치석은 칫솔질과 치간칫솔로 제거하기 어렵다. 따라서 잇몸에 특별한 증상이 없더라도 1년에 한 번 이상은 치과에서 스케일링으로 치석을 제거해야 한다. 이때 치과 의사는 전반적인 구강 상태도 살펴본다. 즉 스케일링을 받는 것은 구강 노쇠를 예방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구기태 교수는 “일반적으로 잇몸 상태가 아주 좋고 관리가 잘된 경우에는 연 1회 스케일링 치료를 권장한다. 그렇지 못한 경우 연 2회, 3회 등으로 횟수를 조정해야 한다. 실제로 잇몸 상태도 좋지 못한데 치아 관리도 미숙해 매월 1회씩 연 12회 스케일링 치료를 진행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 보통 6개월에 한 번 치과를 방문하고 너무 딱딱하거나 질긴 음식이나 탄산음료를 줄이는 것이 좋다. 정기적인 치과 검진과 스케일링, 올바른 칫솔질, 치실·워터픽·치간칫솔 등 보조적인 기구의 올바른 사용 등 일상 속 생활습관을 통해 구강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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