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중국 미술 시장 공략하는 조각가 김병호

  02 06월 2024

미국의 미술비평가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Epstein Krauss·1941~)는 공간 지향의 미술을 네 가지로 분류했다. 풍경과 건축물의 조합인 장소-구축물(site construction), 풍경과 풍경이 아닌 것의 조합인 표시된 장소(marked site), 건축물과 건축물이 아닌 것의 조합인 자명한 구조물(axiomatic structure), 풍경도 건축물도 아닌 조각이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이론가·건축가인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와 스콧 브라운(Denise Scott Brown) 부부는 《라스베이거스의 교훈》을 통해 ‘건축은 거주 공간(shelter) 역할과 기호(signage)라는 소통, 장식, 정보, 상징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사불란한 통일성보다는 복잡다단한 모순을, 모더니즘의 형식주의보다는 역사성과 지역성(vernacular)의 문맥을 강조했다.

ⓒ시사저널 최준필

사람의 손길을 배제하는 김병호의 독창성

건축, 실내에 놓일 수 없는 대형 조각의 공통점은 ‘장소 특정적’이다. 조각가 김병호(50)의 지론은 “엉뚱한 조각품보다 나무 한 그루가 낫다”이다. 한국과 같은 고밀도 대도시에서 대형 조각품을 설치할 수 있는 장소는 제한돼 있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김병호는 철저히 계획된 도면과 조직화된 시스템을 통해 작품을 ‘생산’한다. 작가의 드로잉은 작업의 방향을 시각화한다. 설계도는 재료의 특성을 반영하며 수리적 계산이 뒤따른다. 작가는 도면에 따른 작업을 수행할 최적의 기술자나 공장을 찾는 전 과정을 컨트롤한다. 그는 “핸드 드로잉보다는 메커니컬(mechanical·기계로 작동하는) 드로잉에 더한 희열을 느낀다”고 말한다.

많은 전문인력이 투입되므로 그의 작업은 자본지향적이다. 그는 “지금 시대의 고급 문화는 자본을 따른다”고 솔직히 말한다. 여기서 자본은 ‘자본주의화된 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주요 프로파간다(선전물)인 대형 조각도 포함한다.

김병호 작품의 특징은 메커닉과 공예성의 조화다. 메커닉은 작품의 재료가 인공적으로 생산된 공업 재료를 의미한다. 그의 공예성은 사람의 손길을 철저히 배제한다. 크라우스의 공간 미술 분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한국의 고급아파트 단지 내 조형물(대형 조각) 재료로 많이 쓰이는 스테인리스스틸의 화려한 광택은 장인의 솜씨에 따라 좌우되는 제작 방식을 거부한다.

“사회는 도로와 각종 신호체계, 식당의 테이블 및 의자, 스케치북, 표준 사이즈의 합판 등 모든 것이 규격화돼 있다. 사람은 사회화 과정에서 이러한 게 습관, 사고, 인식의 틀로 작용한다.”

작가 자신도 이미 체화한 인공적인 것들(things)을 버리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기준이나 표준을 정한 다음, 거기에서 벗어나는 사례를 비정상으로 재단해 버린다. 작가는 규격에서 벗어난 자기만의 틀을 만들기 위해 대량 생산 재료가 아닌, 필요한 재료를 얻는 방법으로 주물 작업을 선호한다. 자주 사용하는 브론즈(청동)는 각 금속의 비율 배합에 따라 다른 종류의 금속이 된다. 고대의 재료 브론즈가 인간 삶과 관계된 본원성을 존중한다.

철은 철광석에서 추출한다. 철은 판재, 봉, 튜브 등 쓰임새에 따라 가공된다. 정원의 가드레일에 쓰이는 철 파이프도 원류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에서 추출한 것이다. 김병호의 작업은 여러 단계를 거친 가공된 재료를 사용하는 데 익숙하다. 모든 미술은 오브제(재료)에서 시작한다. 2026년에는 ‘두께’를 주제로 국내외에서 대규모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미술의 오랜 주제인 점, 선, 면은 너무 뻔하다. 절대적인 직선과 평면은 없다. ‘두께가 어떻게 되세요?’ 그런 말은 없지 않나.”

독일 현대미술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1938~)는 1969년 그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전도·顚倒 회화’를 처음 선보였다. 바젤리츠는 자신의 뒤집어진 그림 앞에서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다는 식의 질서는 하나의 약속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 약속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그대로 믿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The Climax ⓒ김병호 제공
Silent Propagation ⓒ김병호 제공

조각 작품으로 급변하는 中 미술 시장 공략

김병호는 2018년 중국 상하이 한국계 갤러리에서 개인전 《현혹, 眩惑, Enchantment》를 가졌다. 2022년 1300평 규모의 중국 선양 K11미술관과 2023년 우한 K11미술관에서 순회 전시도 가졌다. 작품은 대도시인 상하이, 선전, 난징에도 설치됐다. 중국 현대미술은 역사가 짧지만 광대한 시장, 발전 속도 면에서 세계 미술 시장을 견인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2011년 1월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들어선 공자상(孔子像)이 얼마 가지 않아 철거됐다. 석조 기단(1.6m)을 합치면 9.5m 높이의 거대한 동상이었다. 당시 중국인은 “마오쩌둥이 공자를 이겼다”고 평했다. 중국 인민에게 신과 같은 존재가 된 마오의 재등장은 시진핑 체제가 본격화되었음을 의미했다.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 유지를 위해 미술을 프로파간다(propaganda·선전)의 핵심 매체로 본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은 구상성이 강하다. 표현에 있어 당과 국가의 개입이 심하다. 사회주의 이론에서 선전·선동은 정치 영역에 포함된다. 중국은 베이징 798예술특구 등을 조성해 서구 미술을 접하면서 새로운 미술을 요구한다. 비구상(추상) 조각도 그렇다. 김병호는 지난 세 번의 대규모 중국 개인전에서 홍보에 초점을 두었다. 7~8m, 12m 등 대형 작품 위주로 선보였다. 비구상 대형 조각에 대한 인식 제고가 목적이었다.

작가는 올 6월 충북 청주시 청남대 호수영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이어 12월 아라리오 갤러리(천안, 서울)에서 개인전을 가진 후 본격적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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