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한 간서치의 좌충우돌 인생기

‘책만 보는 바보’를 일컬어 간서치(看書痴)라고 한다. 모름지기 간서치가 되기 위해서는 한 분야를 탐독해 전문가가 되면 안 된다. 모든 종류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낼 때 그 가치는 올라간다. 그런 면에서 이 시대 간서치를 대표하는 인물로 김미옥 작가를 꼽는 데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활자중독자이며 고급독자를 지향합니다’라는 자기소개를 한 페이스북의 팔로어도 1만 명이 넘고, 김 작가를 소개하면 이미 매대에서 사라진 책들도 다시 살아난다. 최근 김 작가가 읽는 자에서 쓰는 자로 영역을 넓히고, 《미오기傳》과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를 출간했다. 후작이 작가가 만난 책들에서 찾아낸 진주라면, 앞 책은 순수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미오기傳│김미옥 지음│이유출판 펴냄│280쪽│1만8000원

《미오기傳》은 ‘선빵 정신’으로 세상과 맞짱을 뜨며 살아온 작가의 구수한 입담이 일품인 일대기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마주한 세상은 힘들었다. 하지만 작가는 입담만큼이나 담담한 힘으로 세상을 대하면서 자신의 길을 만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교과서 대금을 주지 않더니 급기야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서 돈을 벌어오라는 거였다. 엄마는 내 손을 끌고 제과 공장으로 데리고 갔다.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와서 양녀로 입양하겠다고, 저 아이를 내가 키우겠다고 엄마와 드잡이했다. 공사판에서 자갈을 나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던 억센 엄마와 50년을 노처녀로 살아온 고집 센 선생님의 한판 대결에 동네가 시끄러웠다.”

당연히 그녀를 키운 것은 책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에 도서관의 문지기를 했고, 이후 책에 대한 열정은 그녀의 ‘황금 배낭’이자 갑옷이 되어주었다. 12세 때부터 공장에서 일하며 일당을 벌어야 했던 와중에도 책을 놓지 않았다. 입주 과외를 전전하며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도 책을 탐닉했으니 그가 독서를 통해 삶의 구원을 얻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읽은 책은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워 SNS에 열성적으로 소개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그는 활자중독자에서 북 인플루언서로 세상에 회자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릴 적 나의 독서는 하느님의 ‘황금 배낭’ 같은 것이었다. 하느님은 길을 떠나는 이들에게 돌이 든 배낭을 공평하게 나눠주는데 끝까지 들고 간 사람은 배낭 속의 돌이 황금이 되어 있더라, 뭐 그런 식.”

작가가 과거와 화해하고 삶을 살아내는 힘을 얻는 것도 바로 이 같은 태도에 있다. 산다는 건 연필처럼 제 몸을 깎아내는 일이라며 자신의 과거에 다정하게 악수를 청한다.

“세상을 사는 것은 연필처럼 제 몸을 깎아내는 일이었다. 조금씩 줄어드는 몸피를 보면서 나를 스쳐 간 시간을 절감했다. 이제 볼펜 몸통에 의지하던 몽당연필처럼 내 삶도 소멸하게 될 것이다. 나는 오늘 다시 연필로 편지를 쓰고 싶다. 연필 세 자루를 정성 들여 깎아서 긴 편지를 쓰고 싶다. 나의 연필로 쓰인 문자가 구부리고 펼치고 넘어지며 마침내 날아올라 결승(結繩)이 되어 그대를 묶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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