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뮤지컬 시장 공략 나선 K뮤지컬

K뮤지컬이 세계 뮤지컬의 본고장 무대에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 뮤지컬의 중심지인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시장에 진출했다. 그동안 K뮤지컬을 일본이나 중국에서 현지 스태프와 배우들이 라이선스 방식으로 공연한 적은 많았지만, 뮤지컬 장르의 대표 언어인 영어를 사용하는 영국과 미국에서 정식 영어 버전으로 올라간 사례는 없었기에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리 퀴리》 런던 공연 ⓒ라이브(주) 제공

현지 스태프와 협업해 해외 진출

뮤지컬 《마리 퀴리(Marie Curie)》가 영어 버전으로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6월1일 개막했다. 이 작품은 한국 공연제작사 라이브의 강병원 대표가 현지 프로덕션의 리드 프로듀서로 참여해 영국 현지 제작진과 배우들을 꾸린 작품이다. 《마리 퀴리》는 폴란드계 프랑스인 물리학자이자 화학자로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해 여성 최초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마리 퀴리(1867~1934)의 삶을 소재로 한 한국 창작 뮤지컬이다.

한국 뮤지컬에 서양 위인 소재의 작품이 많이 있지만, 이 작품은 주연 캐릭터의 고향인 유럽 공연 시장에 역수출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2018년 트라이아웃 공연을 거쳐 2020년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초연된 이후 세 번의 시즌 공연을 가진 바 있다. 특히 2022년에는 마리 퀴리의 나라인 폴란드에서 쇼케이스 공연을 가져 호평을 받았다. 그 결과, 이번 웨스트엔드 진출에도 탄력을 받았다.

창작자들 모두 한국인이다. 천세은 작가와 최종윤 작곡가가 작업한 한국어 공연의 대본과 음악을 바탕으로 영국 현지 스태프(연출가 사라 메도우스, 음악감독 엠마 프레이저)와 함께 현지화 과정을 거쳤다. 한국에서 만들었고, 영국 배우들이 노래하는 《마리 퀴리》는 ‘오프-웨스트엔드 채링 크로스 시어터’에서 7월28일까지 공연한다.

2000년대 들어 한국 뮤지컬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끌었던 프로듀서들이 많은 제작 노하우를 갖고 해외 진출에 공을 들였다. 현지 창작진, 스태프와 협업해 신작을 무대에 올리는 도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우수한 지식재산권(IP) 확보가 중요한 콘텐츠 산업에서 한국 제작자가 더 큰 해외 시장에 참여해 성공을 거두며 로열티를 받는 수혜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 역 제레미 조던과 데이지 역의 에바 노블자다 ⓒMatthew Murphy and Evan Zimmerman 제공

국내 제작사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가 리드 프로듀서를 맡은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는 지난해 11월 트라이아웃에서 매진 행렬을 기록하고 그 여세를 몰아 브로드웨이 입성에 성공했다. 미국 유명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그간 많은 히트작들이 거쳐간 ‘브로드웨이 시어터’에서 막을 올렸다는 점도 뜻깊다.

광란의 1920년대 재즈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극의 특성상 젊은 부호 개츠비의 공허한 심리 상태를 대비시키는 성대한 파티가 빅밴드 음악과 함께 대향연으로 펼쳐지는 작품이다. 특히 무대와 의상 디자인에서 찬사를 받고 있다.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는 작곡가 제이슨 하울랜드, 연출가 마크 브루니와 함께 신예 창작진으로 각본가 케이트 케리건, 작사가 네이슨 타이슨이 합류했다. 주인공 개츠비와 데이지는 물론이고 주변의 조연 캐릭터들에게까지도 시야를 넓힌 새로운 각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3월29일 프리뷰에 이어 4월25일 정식 개막을 알렸고, 개막 3주 만에 매출액 128만 달러(약 17억7241만원)를 돌파하며 장기 레이스에 접어들었다. 만약 올해 뉴욕을 방문하면 한국 프로듀서가 만든 현지 문화를 짙게 느낄 수 있는 따끈따끈한 신작을 관람할 수 있다.

CJ ENM이 제작해 다섯 번째 시즌 공연이 예정된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은 10월17일 브로드웨이 프로듀서 주도로 뉴욕 브로드웨이 벨라스코 시어터 무대에 오른다. 국내 뮤지컬계에서 ‘윌휴 콤비’로 불리는 박천휴 작가와 작곡가 윌 애런슨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이들은 동명의 한국 영화를 각색한 《번지점프를 하다》(2012), 미래의 한국을 배경으로 인간적인 로봇의 이야기를 담은 《어쩌면 해피엔딩》(2016), 일제강점기 조선 최초의 테너 이인선의 삶을 다룬 《일 테노레》(2023)에 이어 197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올해 말 선보일 신작 《고스트 베이커리》까지 모든 작품을 함께 하는 굳건한 창작 파트너다.

《어쩌면 해피엔딩》(2024) 배우 신재범, 장민제 ⓒCJ ENM 제공

정부도 K뮤지컬 해외 진출 지원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국에서 초연된 한국 창작진의 작품이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는 첫 사례이기도 하다. 창작 초기부터 이들이 작품 개발을 주도해 우란문화재단에서 트라이아웃 초연을 거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정식 한국 레퍼토리 공연을 거치면서 영어 대본으로도 완성해 2020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첫 영어 공연까지 마쳤다.

이 작품의 플롯은 최근 수년간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따뜻한 SF 소설’ 계열의 작품들과 그 결이 닿아있다. 21세기 후반, 한국에서 사는 도우미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인간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서 겪는 이야기다. 이 작품의 연출가는 애틀랜타 공연부터 맡았던 브로드웨이 배우 출신의 마이클 아덴으로 지난해 《퍼레이드》로 토니상 최우수 연출상을 받았다.

움직임이 강조된 개성 있는 전작들인 《스프링 어웨이크닝》과 《원스 온 디스 아일랜드》에서 이미 호평받은 바 있는 실력자다. 한국 공연에서는 주인공 올리버와 클레어 외에 멀티 역할의 배우 한 명만 출연하는 소극장 3인극이었지만 1000석 규모의 벨라스코 시어터 무대에서는 멀티 역할의 배우를 여러 명의 앙상블이 나눠 맡을 예정이라고 한다. 브로드웨이의 새로운 스타 연출가의 눈으로 보는 재해석도 기대된다.

이러한 분위기에 정부도 최근 적극적으로 K뮤지컬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단순 비교로만 봐도 연간 4500억원 규모의 한국 뮤지컬 시장보다 2조원의 브로드웨이 매출 규모는 4~5배에 달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는 2021년부터 ‘K뮤지컬 국제마켓’을 개최하며 우수한 작품들을 선정해 단계별 전략에 따라 쇼케이스를 통해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마리 퀴리》는 주영한국문화원이 후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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