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100일, ‘한동훈 카드’의 명과 암

  04 04월 2024

지난해 12월26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과천’을 떠나 ‘여의도’로 직장을 옮겼다. 법무부 장관이었던 그는 여권 위기를 수습하고 총선을 지휘하는 중책을 떠맡았다. 자칭 야구광인 그는 “9회말 2아웃 2스트라이크에 후회없이 (배트를) 휘둘러야 한다”는 취임 각오를 밝혔다.

그로부터 100일째, 한 위원장의 ‘선구안’에 대한 정치권의 평가는 나뉜다. 당내에선 지난해 보궐선거 후폭풍을 안정적으로 수습하고, 당의 구심점 역할을 준수하게 해내고 있단 호평도 나온다. 이재명 대표에 버금가는 ‘팬덤’과 스타성도 그의 강점으로 꼽힌다. 다만 용산과의 거듭된 갈등과 공천 잡음, 여기에 ‘야당 심판론’으로 귀결되는 단일한 메시지 탓에 ‘산토끼’ 잡기에는 약점을 드러냈다는 시각도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인재영입 환영식에서 사회자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9회말 2아웃’ 상황서 등판, 韓의 행보는?

한 위원장은 지난해 여권 상황을 ‘9회말 2아웃’ 위기라고 진단하며 비대위원직에 올랐다. 실제로 당시 당내에는 총선을 앞두고 걱정이 만연했다. 지난해 10월 진행된 강서구 보궐선거 참패 후폭풍의 여파로 정부여당의 지지율은 30%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전망도 비관적이었다. 당시 국민의힘 자체 여론조사에서는, 차기 총선에서 서울 지역 대부분이 전멸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이 같은 위기를 뒤집기 위해 한 위원장은 인적쇄신을 통한 ‘세대교체’에 몰두했다. 그는 비대위에 대체로 젊은 비정치인 출신들을 기용했다. 중수청(중도층·수도권·청년층) 민심을 잡아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 ‘운동권 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민주당이 운동권 특권 세력, 개딸(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 전체주의 세력과 결탁해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새로운 총선 구도를 제시했다. 한 위원장의 ‘입’에 정치권 이슈가 집중되자, 정치 경험 부족을 우려했던 당내 인사들 사이에서도 호평이 나왔다.

한 위원장이 법무부장관 시절부터 선보였던 특유의 화법도 관심을 모았다. 그는 국민들을 ‘동료시민’으로 호칭하며 야당과 구분점을 뒀다. 특히 그는 “고질적인 여의도 사투리에서 벗어나겠다”며 ‘불체포특권 포기’를 비롯한 정치개혁 공약도 연이어 제시했다. 이 같은 한 위원장의 전략이 일정 주효했고, 당시 그는 당 지지율을 민주당에 역전시키는데 성공했다. 또 그는 가는 곳마다 지지자들도 인산인해를 이루며 지지세를 입증하기도 했다.

다만 한 위원장은 취임 한 달도 되지 않아 ‘사천 논란’과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다. 당시 불거진 당정 갈등으로 대통령실 일각에선 한 위원장을 향해 사퇴 촉구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김 여사 논란 관련 당의 대응 방식을 두고 소신을 굽히지 않으며 대통령실과 줄다리기를 이어갔고, 결국 윤 대통령과의 서천 화재현장 회동을 통해 갈등을 임시 봉합했다.

당내에선 한 위원장이 당정 관계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총선에 플러스 요인을 만들었다는 호평도 나왔다. 국민의힘의 한 초선 의원은 시사저널과 만나 “윤석열 정부의 인재풀이 부족해 연이어 실정이 나왔고 이것이 여당에도 악재로 이어졌다”며 “그런 상황에서 한 위원장이 필요한 선긋기를 하면서 위기도 잘 수습하고 결국엔 정부여당이 함께 윈윈할 수 있는 결과를 내려고 노력한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이후 당정갈등은 총선을 한 달 가량 앞둔 시점에서 또 찾아왔다. 이종섭·황상무 논란이 불거지면서 정부여당 지지율이 같이 하락한 것이다. 여기에 위성정당 비례대표 공천을 놓고도 당내 친윤(친윤석열)계와 친한(친한동훈)계 세력 싸움까지 불거졌다. 이에 한 위원장은 “두 사람의 거취를 확실히 결단해야 한다”며 강공법으로 밀고 나갔다. 관련해 대통령실 일각에서도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관계가 루비콘 강을 건넌 것 같다”는 관측까지 나오기도 했다.

공천 국면도 민주당을 시끄럽게 했던 ‘비명횡사’ 같은 논란 없이 조용히 넘어갔다.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들도 탈당 등 반발 없이 시스템 공천에 따르겠다고 순응한 것이다. 다만 일각에선 ‘조용한 공천’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현역 교체율이 35%에 불과할 정도로 물갈이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공천에 탈락한 인사는 시사저널에 “결국 친윤계가 전원 살아남으면서 한 위원장이 약속했던 인적쇄신은 무산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특히 최근 정부발 악재로 초래된 당의 총선 위기 상황을 한 위원장이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최근 진행된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서울 등 수도권은 물론 ‘보수 텃밭’으로 불리는 PK(부산·울산·경남) 지지율도 흔들리고 있는 추세다. 관련해 일각에선 당내 거물급 인재들을 적극 활용해 총력전을 펼쳐야 함에도, 한 위원장이 여전히 ‘원보이스’ 체제에 머무르고 있어 답답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관련해 한 위원장은 지난 3일 ‘취임 100일’ 소회를 밝히는 과정에서 “저희의 잘못, 저희의 부족한 점을 저에게 말해 달라. 제가 온몸으로 반드시 해결하겠다. 제가 100일간 그걸 해결하려 정말 발버둥 쳐온 거 보시지 않았나”라고 지지자들에게 호소하기도 했다. 또 그는 유권자에게 큰절을 하자는 당내 제안과 관련해선 야권을 겨냥해 “범죄자와 싸우는 데 왜 큰절을 하나”며 “서서 죽을 것”이라고 사즉생 각오를 보였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3일 강원 춘천 명동에서 김혜란(강원 춘천시철원군화천군양구군갑) 후보, 한기호(강원 춘천시철원군화천군양구군을)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이기에 버틴 것” “여의도 문법 고수 한계”

전문가들도 한 위원장의 취임 100일에 대한 평가가 분분한 모양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한 위원장이기 때문에 현재까지 잘 버텨온 것이다. 나름대로 잘했다고 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한 위원장 특유의 촌철살인 발언으로 기존 여의도 정치에는 없었던 정치적 감각도 충분히 보여줬고 현재까지 이슈에서의 정무적 판단도 뛰어났다“고 봤다.

반면 한 위원장이 국민들의 기대치에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평도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물론 전임 김기현 대표보다는 신선함이나 소통방식에서 당연히 낫고 당에 전환점을 마련했을지 몰라도, 이후 행보는 외연 확장에 실패했다”며 “야당을 범죄 집단으로 치부하며 오히려 여의도 문법을 반복해서 써왔다. 그러면서 본연의 이미지도 소진됐고, 앞으로 일주일동안 여론의 반전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 위원장의 최종 정계 성적표와 차기 대권 가능성은 총선 직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은 공천 과정과 ‘이종섭·황상무 논란’에서 한 위원장의 말을 들었는데도 총선 패배하면 한 위원장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고, 반대로 한 위원장은 총선 직전 일련의 포석을 통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며 “선거가 끝난 다음엔 책임론을 두고 갈등이 커질 것이다. 그 향방에 따라 한 위원장의 정치 행보가 판가름날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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