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巨野의 자신감’ 혹은 ‘피의자의 불안’? 거칠어진 이재명의 속내는

  18 06월 2024

“정치는 왜 하며 권력은 왜 갖느냐. 권력 줬더니 보복이나 하고.” (6월12일)

“대북송금은 희대의 조작, 언론이 검찰 애완견처럼 왜곡해.” (6월14일)

“북한 가겠다고 수십억? 이화영 부지사가 바보거나 정신 나갔나.” (6월1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입’이 연일 거칠어지는 모양새다. 본인을 둘러싼 ‘사법리스크’에 검찰은 물론 사법부와 언론까지 편향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주장하면서다. 민주당 지지층 및 지도부도 이 대표의 주장을 적극 옹호하고 나선 가운데 여권은 ‘막말’과 ‘삼권분립 훼손’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양상이다. 정치권에선 총선 압승 후 이 대표의 높아진 비판 수위와 달라진 태도를 두고 상반된 해석이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4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공직선거법 관련 재판에 출석하기에 앞서 취재진 앞에서 입장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리스크’ 앞 전방위 포격 시작한 李

총선 직후 이 대표의 일성은 ‘민생 정치’였다. 정쟁이 아닌 정치와 민생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이 대표의 첫 메시지였다. 이 대표는 총선 승리가 확정된 지난 4월11일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장에서 “당의 승리나 당선의 기쁨을 즐길 정도로 현재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며 “늘 낮고 겸손한 자세로 주권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거야(巨野)의 수장이 된 이 대표는 영수회담을 진행하는 등 ‘협치’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었고, 그 기간 당 지도부의 정부 비판 수위는 ‘톤 다운’됐다. 그러나 최근 정부 여당을 향한 공세 세기를 다시금 높여가는 양상이다. 21대 국회 막바지 윤 대통령이 ‘채상병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 등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가운데, 여당이 22대 국회 원구성 협상 결렬 후 ‘국회 보이콧’을 선언한 게 화근이 됐다.

이 대표의 목소리가 커진 결정적 계기가 자신을 둘러싼 ‘사법리스크’ 탓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 대표는 현재 ▲대장동·백현동·성남FC 등 뇌물·배임 ▲공직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사건 등 세 개 재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여기에 최근 ‘대북송금 사건’까지 기소되면서 4개의 재판을 동시에 받게 됐다.

이 중 가장 최근에 기소된 ‘대북송금 사건’의 경우 최측근인 이화영 전 경기도부지사가 관련 혐의로 9년6개월 중형을 선고받으면서 이 대표는 코너에 몰린 상황이다. 앞서 법원은 쌍방울이 북한에 준 800만 달러가 경기도의 스마트팜 사업과 경기도지사의 방북비 명목이었다는 검찰 측 공소사실을 모두 받아들였고, 이 판결은 검찰이 이 대표를 기소하는 데 결정적 근거가 됐다.

이후 이 대표는 공개석상에서 정부 및 여당, 검찰을 넘어 판결을 내린 사법부와 이를 보도한 언론까지 융단폭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12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 공개회의에서 정부 여당을 향해 “도대체 정치는 왜 하며 권력은 왜 갖느냐. 불필요한 생떼나 쓰고, 권력 줬더니 보복이나 하고”라며 격분한 모습을 보였다. 이 대표의 고성에 주변 최고위원 등이 깜짝 놀라 회의장에 ‘정적’이 흐르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 대표는 14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관련 재판에 출석하기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서는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해 “희대의 조작”이라며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기는커녕 마치 검찰의 애완견처럼 주는 정보를 받아서 열심히 왜곡 조작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17일 당 최고위원회의 종료 직전 추가 발언을 자청해 검찰이 자신을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으로 기소한 데 대해 “증거고 뭐고 다 떠나서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상식에 어긋난 주장을 검찰이 하는 것”이라며 “이게 대한민국 검찰 공화국의 실상”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이 대표의 이 같은 모습에 여권은 ‘이재명 방탄’ ‘사법부 무력화’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하는 양상이다. 이 전 경기도부지사의 유죄로 ‘검찰의 조작 수사’ 주장이 흔들리자, 이 대표가 비판 범위를 사법부와 언론까지 확대하며 선동에 나서고 있다는 주장이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이 대표가 제3자 뇌물혐의까지 기소되니까 이 대표와 친명계 의원들이 감정이 격해지면서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은 듯하다”며 친명(親이재명)계 의원들을 향해서도 “충성도 정도껏 해야지”라고 말했다. 장동혁 원내수석대변인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가 상황에 맞지 않는 매우 과격한 언어를 사용하거나 필요 이상의 격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두려움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2022년 9월27일 구속영장 심사를 받기 위해 수원지방검찰청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野 ‘李 엄호’ 속 당 일각 “초조해보여” 우려도

반면 민주당과 일부 당원들은 이 대표를 적극 옹호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해 법원을 압박하는 한편 강성 지지층은 이 대표 사건 심리를 맡은 판사를 탄핵해야 한다며 서명 운동에 들어갔다. 강성 친명계로 분류되는 양문석 민주당 의원(경기 안산갑)은 15일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검찰의 애완견이라는 표현은 애완견에 대한 모독이다. 앞으로 그냥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라고 하면 좋을 것”이라며 검찰과 언론을 향해 맹비난을 쏟아냈다.

17일 국회에서 만난 친명계 한 초선의원은 “판사와 언론의 보수화(化)가 너무 심각하다”며 “특히 ‘강남 8학군’ 출신들이 장악한 사법부의 판결은 신뢰성을 잃은 지 오래다. 총선을 통해 드러난 민심을 검찰과 언론, 사법부가 같이 왜곡하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민주당 일각에선 이 대표의 ‘전방위 폭격’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다투는 전장이 법원이 아닌 국회가 되는 순간, 민주당이 내세운 ‘민생 국회’라는 표어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민주당 한 재선의원은 “아무래도 재판이 길어지다보니 이 대표가 초조해보인다”며 “언어의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면 국민의 상식과 거리가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 대표의 최근 언행과 관련해 “언론을 위축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한 말은 아니라고 본다. 분개해서 한 얘기”라면서도 “매우 적절치 않았다”고 지적했다.

면책 조항: 이 글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이 기사의 재게시 목적은 정보 전달에 있으며, 어떠한 투자 조언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침해 행위가 있을 경우, 즉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또는 삭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