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근 변론 논란’으로 본 다단계 사건들...탈북자도 당했다

  14 04월 2024

박은정 조국혁신당 비례1번 당선자 남편이자 검사장 출신인 이종근 변호사의 전관예우 논란을 계기로 다단계 사기 사건이 부상했다. 이 변호사는 다단계 사건 수사 경험을 바탕으로 업체 측인 여러 피고인을 대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변호사 개업 이후 한 해 수십억원의 수임료를 받은 사실까지 알려지며 논란이 증폭됐다. 이 변호사는 “전관예우나 위법성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 변호사가 고발당하고 다단계 범죄가 부각되는 등 여진은 이어졌다. 시사저널은 피해자 인터뷰와 고소장·공소장·판결문 등을 토대로 여러 사기 사건을 되짚어봤다.

ⓒ일러스트 김세중

“구두 수선해 번 2억인데”…서민 울린 다단계

경기 안양시에 거주하는 이지은씨(가명·52) 남편의 사업은 2년여 전부터 기울기 시작했다. 이씨는 조금이나마 돈을 불리기 위해 투자처를 알아봤다. 그러다 주변의 소개로 ‘아도인터내셔널’과 연이 닿았다. 이곳의 수익 창출 방식은 이랬다. 온라인 쇼핑몰의 반품 물건을 헐값에 구매하고, 이를 해외에 판매해 이익을 남기는 것이다. 업체는 2023년 2월 설명회에서 “230%의 마진”을 언급하며 이처럼 설명했다.

이지은씨는 종잣돈 2000여만원을 업체에 입금했다. 하지만 수익은커녕 원금도 회수하지 못했다. 사건 피해자만 3만여 명, 피해액은 4000억원으로 추산됐다. 피해자 대다수가 고령 은퇴자들이라고 한다. 검찰은 2023년 9월 이후부터 사건 관련자 20여 명을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유사수신은 법령에 따른 인허가나 등록·신고 없이 불특정 다수에게서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다. 이종근 변호사는 아도인터내셔널 계열사 대표를 대리했다가 논란이 불거진 이후 사임했다.

MBI(Mobility Beyond Imagination) 사건 피해자 김오영씨(가명·62)는 8년째 투쟁 중이다. MBI는 “자회사인 엠페이스(Mface)에 투자하면 엠페이스 광고권과 암호화폐 ‘GRC’를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엠페이스가 중화권 7억5000명이 이용하는 SNS”라고 했다. GRC의 가치가 일 년에 두 배씩 오르고 말레이시아에선 화폐처럼 쓸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곳은 말레이시아에 본부를 뒀다. 하지만 GRC는 거래소에서 유통조차 안 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피해자만 10만여 명, 피해액은 5조원 이상으로 추산됐다.

한국 총책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쳤다. 1심 재판부는 2023년 2월10일 방문판매법위반(불법다단계 영업) 혐의로만 안아무개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다단계는 총책-모집책-판매원-하위 판매원 등으로 연결된다. 특정인에게 가입을 권유해 하위 판매원을 늘리는 피라미드식 구조다. 피해자들이 다수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안씨는 보석 석방됐다. 피해자들은 지난 2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특경법상 사기) 혐의로 안씨를 고소했다. 김오영씨는 “보험설계사의 수차례 설득으로 평생 구두 수선을 하며 모은 2억원을 넣었다”며 “현재 집을 팔아 월셋집으로 옮겼다”고 털어놓았다.

MBI피해자연합 등 단체가 지난해 11월 대구지법 앞에서 사건 관련자의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금융피해자연대 제공

“범죄수익 몰수 등 처벌 강화하라”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는 요양보호사 최신희씨(가명·52)는 2013년 압록강을 건넜다. 중국과 제3국을 거쳐 한국 땅을 밟았다. 네 차례 시도 끝에 탈북에 성공했다. 3년 후인 2016년 ‘해피런 주식회사’(현재 폐업)를 알게 됐다. 업체는 자사 ‘85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면 수당을 챙겨준다고 했다. 자신의 밑에 다른 판매원을 여럿 둘수록 수당을 더 챙길 수 있다고도 했다. 전형적인 다단계 판매 구조다. 최씨는 1080만원을 가입비와 물품 구매비 등으로 냈다.

최신희씨를 비롯한 탈북민 피해자는 300여 명으로 추산됐다. 대부분 한국에 정착한 지 1~3년 된 ‘새내기 탈북민’이다. 전체 피해자는 6만여 명이다. 업체 대표 노아무개씨는 2018년 11월 1심에서 방문판매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와 별개로 피해자들은 2021년 6월 노씨를 특경법상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사건은 현재 진행 중이다. 그사이 여러 명의 탈북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상자산 예치 및 주변인 투자 소개 등에 따라 보상률을 차등 적용한 업체 콕(KOK), 미국 나스닥시장에 가상자산을 상장하겠다고 속인 업체 인터코인캐피털(ICC) 등등 사건은 부지기수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2023년 4분기 기준 8만8651건의 사기 범죄가 발생했다(표 <사기 범죄 발생 및 검거 추이> 참조). ICC 사건 피해자 김정식씨(가명·59)는 “공모자들은 수사 진행 중에도 비슷한 유형의 다른 사기를 저지르며 피해자를 양산했다”고 설명했다. ICC 대표는 지난해 1월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사기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익명을 요청한 다단계 전문 법조인은 “모집책부터 상위 총책까지 일망타진하는 게 중요한데 이러한 경우는 쉽게 보기 힘들다”며 “사건이 관할 수사기관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피해자가 다수인 점 등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단계를 비롯한 사기죄 처벌 수위도 낮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은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금융피해자연대·해피런 탈북민 피해자 비상대책위 등은 4월5일 서울 여의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단계 사건과 관련해 △범죄수익 몰수 △전관예우 변호사 선임 방지 △전국 규모의 통합수사본부 설치 △범죄단체조직죄 적용 △양형기준 상향 등을 요구했다. 한국사기예방국민회 역시 가칭 ‘사기예방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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