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4》 모티브 된 ‘파타야 살인 사건’ 범인 김형진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05 05월 2024

태국 수도 방콕에서 동남쪽으로 약 150km 떨어진 촌부리주에는 동남아의 대표적인 휴양지 파타야가 있다. 원래는 이름 없는 작은 어촌이었으나 1961년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 병사들을 위한 휴양지로 개발되면서 급격한 발전을 이뤘다.

2015년 11월21일 오후 파타야 고급 리조트 단지 내 주차장의 한 차량 안에서 한국인 프로그래머 임동준씨(25)의 시신이 발견된다. 차량 뒷좌석에 야구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임씨 시신을 발견한 주민이 경찰에 신고했다. 현지 경찰은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에 이 사실을 알렸고, 정확한 사망 원인 파악을 위해 부검을 실시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임씨는 가슴 중앙뼈 2개와 갈비뼈 7개가 골절됐고, 왼쪽 폐가 찢어진 상태였다.

ⓒfreepik

사인은 뇌부종이었다. 혈액 내 성분이 혈관 밖으로 빠져나와 뇌 조직 안에 고이고, 이것 때문에 뇌가 부어오르고 신경세포가 손상돼 사망에 이른 것이다. 임씨의 머리 등 온몸에는 폭행당한 흔적이 역력했는데 둔기 등으로 머리를 집중적으로 맞은 것이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됐다. 부검의는 오랫동안 폭행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런데 시신 발견 당일 한국대사관에 임씨 사망과 관련해 신고한 두 사람이 있었다. 이들은 사건 당일 숨진 임씨와 방콕에서 파타야까지 차량을 함께 타고 이동한 김형진(당시 31세)과 윤아무개씨(당시 32세)였다. 이들의 신고 내용은 서로 완전히 달랐다. 김형진은 “윤씨가 임씨를 죽였다”는 식으로 말하고는 직원 김아무개씨와 베트남 호찌민으로 출국했다. 윤씨의 주장은 “김형진이 때려서 죽게 했는데 나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우려 한다”는 것이었고, 도주 대신 파타야 경찰서를 찾아가 자수한다.

도대체 김형진과 윤씨는 임동준씨와 어떤 사이였기에 이국 땅에서 잔혹한 살인극을 벌인 것일까. 숨진 임씨는 의경으로 군 복무를 마친 후 경찰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전 판교신도시에 있는 중소 IT 업체에 프로그래머로 취업했다. 월급이 쥐꼬리다 보니 주머니 사정은 항상 쪼들렸다.

2018년 4월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 송환된 김형진 ⓒ뉴스1

태국 입국 다음 날부터 지옥 시작

그러던 2015년 6월 지인을 통해 김형진을 소개받는다. 조직폭력 집단인 성남 국제마피아 조직원이었던 김형진은 15세 때부터 범죄를 저질러 전과 14범이었다. 그는 석 달 전인 같은 해 3월부터 태국 방콕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 여러 개를 운영하고 있었다. 김형진은 분산돼 있던 도박 사이트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개발자를 물색했다. 그 와중에 임씨를 소개받게 됐고, 급여 월 600만원에 시스템 개발을 맡긴다. 임씨 외에 웹디자이너 A씨도 여기에 참여했다.

김형진은 시스템 개발을 서둘렀으나 일은 생각만큼 빨리 진척되지 않았다. 2015년 9월 김형진은 임씨와 A씨에게 “방콕에서 직접 소통하자”며 “숙식과 체류 비용을 지원할 테니 한 2주 정도 여행하는 셈 치고 오라”고 했다. 당시 김형진은 도박 사이트 운영 혐의로 지명수배된 상태라 국내 입국이 어려웠다. 임씨와 A씨는 김형진의 제안을 받아들여 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9월7일 임씨와 A씨는 공항에서 처음 만나 동행한다. 두 사람은 3개월 동안 체류할 수 있는 무비자로 태국에 입국했고, 김형진은 이들을 자신이 머물고 있던 오피스텔로 데려간다. 이곳은 그가 운영하는 불법 도박 사이트의 근거지였다.

방 3개를 임차해 하나는 자신이 쓰고, 다른 하나는 도박 사이트 관리자 2명이 사용했다. 나머지 한 개는 임씨와 A씨, 그리고 도박 사이트 직원 김씨가 사용하도록 했다. 김씨는 두 사람을 감시하면서 식사 등을 챙겨주는 역할을 했다. 임씨가 사망 당일 동행했던 윤씨도 이곳에서 처음 만난다. 그도 전과 15범의 악질 범죄자였다.

처음 기대와 달리 임씨와 A씨는 입국 다음 날부터 지옥 같은 삶을 맞닥뜨린다. 감금 상태에서 24시간 프로그램 개발에 내몰렸다. 김형진과 윤씨는 프로그램 개발을 다그치면서 밤낮없이 폭력을 행사했다. 주먹질과 발길질이 일상적으로 행해졌다. 약 한 달 후인 10월7일 임씨와 A씨는 함께 탈출을 시도했지만 공항에서 김형진 일당에게 붙잡힌다. 이때부터 이들에 대한 감시와 폭력은 더욱 심해졌다. 11월15일 A씨는 또다시 탈출을 시도해 성공한다.

이번에는 공항이 아니라 한국대사관에 뛰어들어 도움을 요청했다. A씨는 대사관 측에 “프로그래머 한 명이 더 감금돼 있다”고 알려줬다. 하지만 김형진 일당의 근거지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임씨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 A씨가 탈출한 후 김씨 일당은 경찰을 피해 방콕에 있는 윤씨가 사는 곳으로 근거지를 옮긴다.

2015년 11월 임동준씨가 살해되기 며칠 전 태국 현지 엘리베이터 CCTV에 찍힌 모습. 폭행당해 머리 곳곳에 붕대가 붙어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2015년 11월 임동준씨가 살해되기 며칠 전 태국 현지 엘리베이터 CCTV에 찍힌 모습. 폭행당해 머리 곳곳에 붕대가 붙어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탈출 실패 후 괴롭힘 더욱 악랄해져

A씨가 탈출에 성공하자 김형진은 더욱 악랄해진다. 임씨의 탈출 의지를 꺾기 위해 그의 휴대전화를 빼앗은 후 가족과 친구들의 연락처를 확보한다. 이들 중 일부에게 전화를 걸어 협박했고, 국내에 있는 임씨의 여자친구에게는 “동준이 휴대전화에 너랑 성관계한 동영상이 있는데 그걸 인터넷에 퍼트리겠다”며 겁을 줬다.

이런 가운데 임씨는 국내에 있는 친구들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한번은 임씨가 자신의 얼굴을 찍은 사진을 친구에게 보낸 적이 있는데, 이걸 본 친구는 충격을 받는다. 임씨의 눈 주위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고 실핏줄도 다 터져있었던 것이다. 임씨는 또 자신이 폭행당하는 소리를 녹음해 파일 공유 사이트에 몰래 올렸다가 김형진에게 들킨다. 그러자 김형진은 더욱 격분해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다. 이 때문에 임씨는 머리는 물론 온몸이 멍으로 가득했고, 목소리까지 변했다.

김형진은 임씨가 탈출을 시도한 후 그가 태국 입국 전 자취방에서 쓰던 컴퓨터를 집요하게 찾았다. 임씨 친구들에게 컴퓨터의 행방을 물어보는 등 상당히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로 미뤄보아 그 컴퓨터 안에는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불법 도박 사이트와 김형진에 대한 중요 정보가 남아있을 것이라고 추측됐다. 얼마 후 임씨 자취방에서 이 컴퓨터의 본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같은 해 11월19일 김형진과 윤씨는 근거지를 파타야로 옮기기로 한다. 이날 두 사람과 직원 김씨는 임씨를 차량 뒷좌석에 태웠다. 이 과정에서 잔혹한 고문이 자행된다.

김형진과 윤씨는 가슴과 복부, 머리를 목검과 야구방망이 등으로 계속 때렸다. 전기충격기로 임씨의 성기 부위를 접촉해 화상을 입게 했다. 뿐만 아니라 흉기를 이용해 손톱을 빼버리는 잔혹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임씨는 의식을 잃은 채 파타야의 한 리조트에 도착한다. 두 사람은 임씨를 주차장 차량에 방치해둔 채 마약을 했다. 얼마 후 차량에서 숨져있는 임씨를 발견하자 야구모자와 선글라스를 씌워놓고 현장을 떠났다.

임동준씨의 시신이 발견된 후 경찰청은 인터폴에 김형진의 적색수배를 신청한다. 베트남 공안부에는 국제공조 수사를 요청하고, 김형진의 국내 연고 등에 대한 추적에 나섰다. 김형진이 베트남의 한 호텔 카지노에 자주 출몰한다는 첩보가 입수되자 한국과 베트남 경찰이 합동 검거작전을 폈으나 간발의 차이로 놓쳤다. 이후 경찰은 김형진이 베트남의 한 한국 식당 건물에 은신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해 호찌민 총영사관의 경찰 영사와 현지 공안의 공조수사로 검거하는 데 성공한다. 김형진이 도피 행각을 벌인 지 2년4개월 만이다.

태국 경찰이 임동준씨의 시신을 옮기고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검거 후 기자에게 “모르면 찍지를 말든가 XX”

김형진은 2018년 4월 국내로 송환된다. 당시 그는 질문하는 기자들을 째려보며 “모르면 찍지를 말든가 XX”이라며 공격적으로 대응했다. “유족에게 할 말 없냐”는 질문을 받자 비웃는 등 전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김형진은 두 가지 혐의에 대한 재판을 받았다. 사건 이후 김형진과 윤씨는 서로 책임을 떠넘겼지만 재판부는 김형진을 주범, 윤씨를 공범으로 판단하고 형량을 정했다.

재판부는 김형진의 공동감금 혐의에 대해 징역 4년6개월, 살인과 사체유기 등 혐의에 징역 17년과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10년을 명령했다. 김형진은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원심 형량을 확정했다. 이로써 그는 총 21년6개월을 복역해야 한다. 공범 윤씨는 태국 경찰에 자수한 2015년 현지 법원에서 살인 및 마약 판매·복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현지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2022년 4월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 윤씨는 살인·사체유기 혐의로 기소돼 징역 14년이 선고됐고,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10년 명령도 받았다. 다만 태국에서 복역한 4년6개월을 징역 기간에 포함하도록 했다. 또 다른 공범인 직원 김씨는 2015년 12월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송환돼 사체유기 혐의로 1년간 복역한 후 출소했다.

영화 《범죄도시4》 스틸컷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범죄도시4》 스틸컷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사건 이후 불법 도박 사이트 조직의 노예 프로그래머 모집이 문제가 됐다. 이에 대해 원찬희 전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팀장(경감)은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은 프로그래머 확보를 위해 좋은 근무조건과 수익을 내세워 아르바이트 모집 사이트 등을 통해 모집하는 경우가 있다”며 “대부분 함정일 수 있으니 여기에 빠져들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은 4월24일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4》의 모티브가 됐다. 영화는 괴물형사 마석도(마동석 분)가 필리핀에 거점을 두고 대규모 온라인 불법도박 조직을 운영하는 백창기(김무열 분)를 응징하는 내용이다.

면책 조항: 이 글의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이 기사의 재게시 목적은 정보 전달에 있으며, 어떠한 투자 조언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침해 행위가 있을 경우, 즉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정 또는 삭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