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려는 내연녀 잡으려 처자식 넷 몰살한 비정한 가장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09 06월 2024

대전시 중구 문화동에 있는 곽아무개씨(여·72) 소유 한옥 기와집에는 30대 부부와 아들 3명 등 일가족 5명이 세들어 살고 있었다. 2005년 8월18일 오후 11시쯤 이 집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더니 동시에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여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도 불은 삽시간에 주택 전체로 번져 나갔다. 요란한 소리에 놀란 이웃이 불이 난 것을 확인하고 119에 신고했다. 소방차가 출동했으나 주택은 걷잡을 수 없이 불길에 휩싸였다. 이웃 주민들은 밖으로 대피해 “안에 사람이 있을 텐데…”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바로 그때였다. 가장인 장아무개씨(35)가 나타나 “집 안에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불은 주택 한 채를 완전히 태운 후에야 진화됐다.

피의자 장아무개씨(모자 쓴 사람)가 2005년 검거된 후 현장검증에서 범행을 재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고사 처리될 뻔했으나 법의학에 덜미

잔불 정리를 하던 소방대원들은 집 안에서 일가족 4명의 시신을 발견한다. 아내 김아무개씨(34)는 막내아들(4)을 품에 안고 거실에서, 큰아들(10·초등 4년)과 둘째 아들(8·초등 2년)은 방문과 현관 앞에서 각각 숨져 있었다. 장씨는 이날 귀가가 늦어져 화를 면했다. 장씨는 화재 원인을 조사하던 경찰과 소방에 “지은 지 25년이 넘은 데다 최근 들어 누전차단기가 작동되는 일이 잦았다”며 “비가 오면서 누전으로 인한 화재 같다”고 진술했다. 이에 따라 화재 감식반도 일단 전기 누전이나 선풍기 과열로 인해 불이 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시신은 장례식장으로 이송돼 의사의 검안을 거쳐 화재사로 진단받았다. 장씨는 장례 절차에 들어갔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전과학수사연구소(대전 국과수)에 화재에 대한 정밀감정을 의뢰했다. 대전 국과수 측은 전기로 인한 사고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부검 필요성을 주장했다. 경찰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시신 부검이 이뤄지게 된다. 시신은 많은 부분이 시커멓게 탔을 정도로 참혹했다. 부검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막내아들을 제외한 시신에서 독극물인 시안화칼륨(청산가리·청산염) 성분이 검출된 것이다.

사람이 화재로 인해 사망하면 시신에는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사체에는 붉은 발적이나 화상으로 인한 물집이 동반된다. 유독가스나 불완전 연소에 의한 일산화탄소를 들이마시기 때문에 혈액은 선홍색을 띤다. 현장에서 죽기 전까지 호흡한 흔적으로 기도에서는 그을음이 확인된다. 하지만 일가족의 시신에는 이런 흔적이 전혀 없었다. 이것은 화재가 나기 전에 이미 사망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당초 화재사고에 무게를 뒀던 경찰은 피해자들이 타살된 후 방화로 인해 불이 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에 들어간다.

화재 현장에서도 몇 가지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한여름인데도 주택의 잠금장치가 모두 안에서 잠긴 채 밀폐돼 있고, 침입 흔적이나 도난 물품도 없었다는 것이다. 보통 화재가 발생하면 대피를 위해 출입구를 찾기 마련이고, 실제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들 대부분은 출입구 쪽에 몰려 있다. 그런데 이번 화재에서 숨진 일가족은 이러한 탈출 본능과는 달리 다른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경찰은 여러 정황상 가까운 주변 인물에 의한 범행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장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다. 장씨를 조사하면서 수상한 행적이 속속 드러났다. 그의 진술은 오락가락하며 일관성이 없었다. 무엇보다 어려운 형편에도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에 고액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사실이 의심을 더욱 키웠다.

경찰은 장씨가 사용하던 대전시 유성구 구암동의 음식 체인업체 컴퓨터에 대한 포렌식 작업을 진행했다. 여기에서 결정적인 범행 증거가 포착된다. 장씨가 자살 사이트에 접속해 청산가리를 구매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모든 정황과 증거가 범인이 장씨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경찰은 이런 내용을 토대로 장씨를 집중 추궁했다.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던 그도 증거 앞에서 더 이상 발뺌하지 못했다. 장씨는 “내가 그랬다, 죽고 싶을 뿐”이라며 범행을 시인한다.

장씨는 가족에게 독극물을 먹인 후 집에 불을 질렀다. ⓒSBS 방송 화면 캡처
장씨는 가족에게 독극물을 먹인 후 집에 불을 질렀다. ⓒSBS 방송 화면 캡처

햄스터 구매해 생체실험까지 진행

장씨는 왜 가족 몰살이라는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대전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장씨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 소개로 만난 아내와 7년 연애 끝에 결혼해 슬하에 아들 셋을 뒀다. 장씨는 안경점, 휴대전화 판매업 등에 뛰어들었으나 잇따라 실패하면서 신용불량자가 된다.

2000년부터 약 1년 동안 경기도 오산에 있는 매형 소유의 슈퍼마켓에서 일하다가 직원이던 이혼녀 김아무개씨와 내연관계에 빠진다. 이때 아내와 아이들은 대전에 있었고, 장씨 혼자 오산에 머물렀다. 2002년부터는 한 프랜차이즈 음식점 청주지사를 약 3년 동안 운영했지만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해 빚만 지고 팔아 넘겼다. 이때까지도 장씨는 김씨와 내연관계를 유지했으나 음식점 운영에 실패하면서 헤어진다.

장씨는 음식점을 정리하면서 아내 김씨에게는 비밀로 했으나 나중에 알게 되면서 심하게 다툰다. 여기에다 오산에서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까지 들키면서 부부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장씨는 가게를 접은 후 대전에 있는 음식점 체인업체에서 배달원으로 일한다. 고정급으로 100만원이 책정됐고, 지사를 새로 유치하면 성과급으로 1건당 100만원을 받기로 했다.

영업 수완이 없었던 장씨는 실적을 한 건도 올리지 못해 월급만 가져갔다. 이 돈으로는 생활이 어렵게 되자 아내 김씨가 보험설계사로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장씨는 내연녀 김씨를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아내와의 관계가 소원해지자 더욱 집착하고 매달린다. 그는 수십 차례에 걸쳐 김씨에게 “다시 만나자”고 애원했다. 하지만 김씨는 “서로 아이들이 있고, 이혼했던 전남편과 재결합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장씨는 내연녀를 붙잡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내연녀와의 관계 복원에 걸림돌이 되는 아내와 아이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는 단순히 가족을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가족 목숨을 담보로 보험료를 챙길 계획을 세운다.

이를 위해 2005년 7월부터 인터넷 등을 통해 보험을 검색했고, 외국계 보험회사 2곳에 자신과 아내 명의로 보험을 들어 아내가 숨지면 자신이 6억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매달 내야 할 보험료가 28만원이었다. 보험 가입 절차를 끝낸 장씨는 이번에는 가족을 죽일 방법을 찾는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죽음’ ‘약’ ‘강력수면제’ ‘마취제’ 등을 집중 검색했다. 심지어 청부살인 사이트까지 검색한다. 장씨는 살해 방법으로 독극물을 쓰기로 한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4명이 공동으로 청산가리를 구매해 4분의 1씩 나눴다. 청산염은 치사량이 0.15g이다. 장씨는 독극물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애완용 햄스터 두 마리를 구매해 청산가리를 주입하는 생체실험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완전범죄를 노리고 치밀하게 움직였다.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위장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일기예보를 검색해 비가 오는 날을 기다렸다. 그러다 ‘8월18일’을 디데이(D-Day)로 잡는다.

범행 하루 전인 8월17일 장씨는 퇴근하면서 케이크와 소주를 샀다. 승용차를 타고 집 앞에 도착해 조수석 사물함에 보관했던 청산가리를 꺼내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집 안에 들어와서는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 케이크를 사이에 두고 둘러앉았다. 장씨는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가족들과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을 재운 후에는 아내와 소주를 나눠 마시고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했다. 이때 아내가 들어와 장씨의 등을 밀어줬고, 샤워가 끝난 후에는 침실에서 성관계를 가졌다.

범행 당일 장씨는 오전 8시쯤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아내의 휴대전화를 챙긴 다음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고 물병을 꺼내 컵에 따라 마셨다. 이때 아내는 아침을 준비하고, 아이들은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아내는 평소 가족의 건강을 위해 약수터에서 약수를 떠다 냉장고에 넣어놓고 매일 아침 공복에 이걸 한 잔씩 마시도록 했다. 장씨는 이런 습관을 범행에 악용했다. 장씨는 아내의 눈을 피해 물통의 뚜껑을 열고 바지 주머니에 있던 청산염을 꺼내 물통에 쏟아붓고 잘 녹도록 흔들었다. 그런 다음 물병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출근한다면서 현관 쪽으로 가서 동정을 살폈다.

2005년 8월19일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관이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끝까지 뻔뻔한 변명으로 일관…사형 선고

아내 김씨는 물병에 든 물을 4개의 컵에 따라 아들들에게 주고 자신도 마셨다. 김씨와 큰아들, 둘째 아들은 거의 동시에 물을 마셨고, 그 순간 ‘컥컥’ 거리면서 바닥에 쓰러진다. 이때까지 물을 마시지 않았던 막내아들은 엄마와 형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어찌할 줄 모르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장씨는 막내아들마저 목 졸라 살해한다. 장씨는 현관문을 잠그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직장에 출근해 태연하게 근무했다. 오후 1시쯤 집에 들러 안경을 가지고 나왔다. 이때부터 아내의 휴대전화로 3회, 집전화로 3회 전화를 걸어 가족들이 그 시간 동안 살아있는 것처럼 꾸몄다.

장씨는 오후 7시20분쯤 회사 선반에 보관돼 있던 시너를 들고 나와 집으로 갔다. 먼저 자연적인 화재로 위장하기 위해 거실에 있던 시신을 재배치했다. 엎어진 아내가 한쪽 팔로 막내아들을 감싸안고 있는 상태로 연출했고, 큰아들은 방문 앞에, 둘째 아들은 현관 앞쪽으로 이동시켰다. 그런 다음 불이 서서히 나도록 집 안을 밀폐시키고, 거실과 가족들의 시신, 욕실 앞에 있는 빨래 위에 시너를 뿌렸다. 마지막으로 1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인 다음 현관문을 안에서 잠근 채 급히 밖으로 나왔다. 장씨는 근처에 있는 PC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밤 10시40분쯤 집으로 왔다. 이때쯤이면 불이 활활 타고 있을 줄 알았는데, 불길은 보이지 않고 검은 연기만 조금 나오자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는 담을 넘어 현관 근처로 갔다. 이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창이 깨지고 불길이 치솟았다. 재빨리 다시 담을 넘어 밖으로 나가자 이웃 주민이 뛰어나왔고, 장씨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울부짖는 것처럼 연기했다. 장씨는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몰고 갔으나, 결국 시신 부검과 법의학에 꼬리가 잡힌 것이다.

장씨는 살인과 방화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되지만 끝까지 변명으로 일관하며 반성하거나 죄를 뉘우치지 않았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범행은 인정하면서도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을 뒤엎었다. 보험금을 노린 계획범행을 부인하고, 보험 가입은 우연이라고 하는가 하면, 청산가리 구입도 자살 용도라고 말을 바꿨다. 일기예보 검색도 단순한 습관이라고 했다. 아이들까지 살해한 이유에 대해서도 모른다는 태도를 보였다. 1심에서는 무기징역을 선고했으나 2심은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한다. 장씨는 여기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도 원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그는 현재 ‘빨간 명찰’을 달고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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