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훈련병 사망 사건은 젠더 갈등으로 비화했을까 [임명묵의 MZ학 개론]

  15 06월 2024

5월25일, 강원도 인제군의 육군 12사단 훈련소에 입소했던 훈련병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에 갔던 만 19세의 젊은 청년이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사망 원인이 심상치 않았다. 훈련병이 전날 떠들었다는 보고를 들은 중대장이 완전군장을 시킨 채로 훈련병들에게 선착순 구보와 팔굽혀펴기를 시켰고, 이는 적절한 군기훈련이 아니라 일종의 가혹행위에 가까울 수도 있는 지시였다. 그 결과, 한 훈련병이 횡문근융해증으로 상태가 급속히 안 좋아져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생명을 잃게 된 것이다.

사건의 전말이 알려지는 과정에 추가로 등장한 정보는 가혹행위를 행한 문제의 중대장이 ROTC 출신 여성 군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특히 군필자가 절대 다수인 남초 커뮤니티의 여론은 훨씬 더 악화되었다. 여기서는 남성 사병보다 신체능력이 떨어지는 여군이 제대로 된 훈련과 지휘를 할 수 없다는 불신의 반응부터, 여성은 사병도 못 하면서 어떻게 장교는 가능한 것이냐는 성토도 나왔다. 이에 ‘가해자가 여군이라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여군 제도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반발이 나왔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일부 여초 커뮤니티의 반응이었는데, 사건이 알려진 직후부터 ‘군대 문제는 남자들끼리 문제니까 알아서 하라’는 댓글이 달리는가 하면, 극단적 성향의 여초 커뮤니티인 ‘워마드(WOMAD)’에서는 훈련병 빈소 사진까지 첨부하며 사망을 조롱하는, 반인륜적인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어쩌다 이 안타까운 사건마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젠더 갈등의 소재가 되어버린 것일까.

5월30일 전남 나주시 한 장례식장 야외 공간에서 얼차려 중 쓰러졌다가 이틀 만에 숨진 훈련병에 대한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왜 남성만 군대에 가나’ 온라인 젠더 갈등

사실 군대 문제는 한국 인터넷 역사 초기부터 젠더 갈등의 주요 원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99년에 군가산점이 위헌 판결을 받고 2001년에 폐지되면서, 남성들은 사회가 군복무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같은 국민인데 그렇다면 왜 여성은 병역을 수행하지 않느냐는 반발도 이 시기에 처음 대중적인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물론 당시만 해도 젠더 갈등의 수위가 굉장히 낮았기 때문에 논쟁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서며, 한국 경제의 저성장이 눈에 띄게 가시화되고 청년기의 불안이 더욱 커지면서 청년 남성들의 군 복무에 대한 불만은 계속 악화되었다. 2년의 시간을 박탈당하면서 또래 여성들에 비해 사회 진출이 늦어지고 있으며, 군 당국과 국가 기구가 청년 남성의 군 복무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울분이 빠르게 확산된 것이다.

2016년 이후 군 복무 문제는 본격적인 젠더 갈등의 소재가 되었다. 그즈음부터 청년 남녀의 젠더 갈등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군 문제는 국가와 남성 사이의 문제이니 여성에게 시비 걸지 말라’며 조롱했고, 군대 얘기를 자주 꺼내는 남성을 ‘군무새(군대+앵무새)’라고 비하했다. 여초 커뮤니티에서 병역에 대한 존중을 거부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자 청년 남성들 위주로 자신들이 갖는 불만을 공론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 상징적 순간이 2017년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이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남녀 모두가 병역 의무를 져야 한다는 청원도 있는데, 재미있는 이슈 같다”는 언급을 남겼는데, 이는 청년 남성들 사이에서 ‘남성만 병역의 부담을 모두 지는 현 상황에 대한 불만이 그저 재미있는 이슈일 뿐이냐’는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마찬가지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성도 국방의 의무를 진다”며 일축한 것도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청년 남성들은 자신들의 문제 제기가 또래 여성들과 제도권 정치인들 사이에서 농담거리로만 치부된다고 느낀 것이다.

물론 그러한 불만이 일부 수용되어 군 복무 처우가 빠르게 개선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 모두에서 병사 급여는 대폭 올랐으며, 영내 휴대전화 사용이 가능해지는 등 다양한 변화가 뒤따랐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계속 심화되는 청년 남성들의 불만을 전부 달랠 수는 없었다. 사실 처우와 보상만큼이나 근본적인 문제는 공동체를 위한 희생에 따르는 사회적 인정과 존중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젠더 갈등의 구도가 지배적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부 여초 커뮤니티가 군 복무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성평등이라더니 군대는 왜 우리만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끊이지 않았다.

최근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구조는 급변하지만 북한의 위협은 여전한 상황도 큰 영향을 미쳤다. 휴전선의 병력 밀도는 유지해야 하지만 병력 자원은 갈수록 줄어드는 필연적 위기는 많은 남성의 관심 사항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도 대답을 계속 회피하는 제도권 정치는 불신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만약 사회 전체적으로 군 복무에 대한 존중 분위기가 오래 지속되고 국방 문제가 우리 사회공동체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이 남았다면 청년 남성들의 불만이 이 정도로 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병역 의무에 대한 회의감 불러일으킬 수도

따라서 이와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갈등 구도를 이해해야 이번 12사단 훈련병 사망 사건에 대한 반응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남성의 군 복무에 대한 존중이 충분치 않다는 여론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청년 여성들이 국방의 의무에 무임승차하고 있으며, 제도권 정치는 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불신이 현재 남초 커뮤니티의 기본적인 정서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 장교’가 남성 훈련병을 가혹행위로 사망에 이르게 했으니, 여군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게 된 것이다.

군 당국의 대응도 여론을 악화하는 데 일조했다. 문제의 중대장에게 휴가를 주고 조사를 신속히 진행하지 않은 것은 이미 끓고 있는 불만에 기름을 부었다. ‘역시 여군이라 대충 넘어가려고 한다’는 반응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당국이 신속하고 철저하게 조사해 사태를 매듭지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남성 장교가 문제를 일으켰던 유사 사례나, 경찰 조직과 여경 문제 이슈를 다시 꺼내면서 군 당국이 ‘여군에 온정적 대응’을 한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이번 12사단 훈련병 사망 사건 역시 이전의 군 관련 여러 사건·사고와 마찬가지로 최근 군 복무를 수행했거나, 혹은 수행하게 될 청년 남성층에게 다시 한번 병역 의무에 대한 회의감을 불러일으키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분위기는 지속적인 처우 개선만으로 반전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지금 청년 남성층의 여론은 변화한 한국 사회와 인구구조, 지정학적 위협의 지속 속에서 병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인식과 존중의 문제다. 그렇기에 정치권도 청년층 사이에서 군 복무를 향한 사회적 공기가 얼마나 악화되었는지 솔직하게 인정하고,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기를 기대해 본다.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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